朝鮮王朝의 水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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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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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KDC
390.0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1-191(21쪽)
이상에서 물어본 바와 같이 조선왕조는 1392년 개국한 이래로 구한말 1895년 통제권과 각 도 수영을 해체할 때까지 500여 년 동안 연면하게 일정한 규모의 수군과 군선을 보지하여 왔다. 이와 같은 일은 동서고금의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사상 일찍이 어느 정도 뚜렷한 형태의 해군력을 구사한 나라로는 페니키아를 꼽을 수 있다. 지금 레바논지방에 자리 잡은 페니키아 사람들은 노를 2, 3단으로 설치한 갤리 군선을 가지고 기원전 8∼10세기에 지중해를 완전히 장악하고 번영을 누렸지만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에 패망 당하고 말았다. 그리스와 중국의 한나라도 해군을 잘 활용한 나라이지만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의 침공을 살라미스 해전에서 격퇴하면서 비로소 해군을 창건했다가 그로부터 200년도 못가서 쇠망하고 한나라 제7대 임금인 무제는 남중국을 정벌하고 우리나라에도 쳐들어오는데 상당한 규모의 수군과 함선을 동원했으나 한나라 자체가 200년(206 BC~5 AD)밖에 존속하지 못하는 등 고대국가의 해군은 한결같이 그 생명이 짧았다.
근세에 들어서 해양에 진출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했던 에스파냐.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에스파냐는 15세기 말엽에 오래도록 이베리아 반도를 제압한 이슬람족의 기반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고 곧 바다에 진출하여 포르투갈과 함께 지리탐험에 앞장을 서서 남북 미 대륙과 필리핀 등 세계 각처에 식민을 하고 무역을 독점하여 한때 크게 번영을 누리고 강력한 해군력도 보유하였다. 그러나 그 무적함대가 1588년 영국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나서는 국운이 사양길에 들어 점차로 해양의 패권을 신흥세력인 영국과 네덜란드에 뺐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은 해군의 전통이 가장 오랜 나라이다. 잉글랜드에 통일왕국이 세워진 것은 9세기 말이다. 이보다 앞서 잉글랜드에 이동한 앵글로 색슨족은 7세기경부터 칠왕국을 세우고 분립하다 9세기에 노르만의 습격을 받아 각 왕국은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다. 노르만과의 전투를 영도한 이가 바로 웨섹스왕인 엑버어트(829~837)와 알프레드(871~901) 등이고 이들에 의하여 영국은 처음으로 앵글로 색슨의 통일왕국이 수립되었다.
영국민들은 지금도 알프레드 대왕을 영국 해군의 원조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이 마련한 해군이란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그 후 수세기동안 계속적으로 노르만의 일파인 덴마크의 딘인이 침입해 오고 11세기에 프랑스의 노르망디공 윌리엄 정복왕(1066∼1087)이 침공하여 드디어 이들에 대한 노르망디왕가가 세워졌다.
영국은 그로부터 성쇠를 거듭하면서도 별다른 해상세력을 갖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조직화된 해군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근세에 들어서이다. 15세기말에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수립한 튜더 왕조의 첫 임금인 헨리 7세(1485∼1509)는 때마침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의하여 주도된 지리탐험에 자극을 받아 해군과 조선의 진흥을 꾀하고 지리탐험에도 끼어드는 등 해사에 전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상비해군도 두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왕위에 오른 헨리 8세(1509∼1547)와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도 모두 해사의 진흥과 해군력의 강화에 부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88년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영국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요격하러 나섰을 때의 군용선은 갈레온선 등 대소 합하여 34척뿐이고 나머지 150여 척은 모두 민간선을 징발하여 임시로 무장한 배들이었다.
그때 에스파냐 함대를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그 후 네덜란드와의 분쟁 나폴레옹과의 격돌 세계 제1차대전 등을 거치며 금일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영국 해군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그 기원을 잘 보아서 16세기 초라 하더라도 조선왕조 수군의 역사만큼 길지 못하다.
여말선초 수군의 장비와 전공이 당대의 유럽 각국보다 1~2세기 앞서고 그 함포로 쟁취된 진포구와 관음포의 해전 승리 등은 세계 해전사상 특기할만한 것이라는 점을 앞에서 이미 지적하였다. 함포의 구사야말로 조선수군에 계승되어 그 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초기에 왜구를 완전 소탕할 수 있었던 것도 함포의 힘이 컸던 것이고 중기의 판옥석도 보는 견지에 따라서는 함포작전을 전개하는 데 가장 적합한 선형으로 개발된 배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전술상으로만 본다면 조총을 가진 일본군이 육전에서 일방적으로 이기고 함포를 가진 조선수군이 해전마다 승리한 전쟁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일본군이 조총을 잘 다루면서도 끝내 함포를 익히지 못한 것은 그들이 육전만을 가지고 쟁패하며 해전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고 조선군이 조총을 외면하면서도 함포를 잘 구사한 것은 여말부터 해전의 훈련이 부지중에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수군의 그 조직에 있어서도 일본군보다 크게 앞서 있었다.
일본수군이 고작 해적 출신의 봉건영주를 모아 편성된데 비하여 조선수군은 여말 이래로 지방군제의 일환으로 빈틈없이 조직되어 수사 검사 만호 등으로 이어지는 관제도 분명하고 선군들도 천역시 되기는 하였으나 세습신분으로 그 잠재적 실력은 대단하였다. 그러므로 임진란 초전에서 붕괴되었다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정제한 수군의 조직은 일본뿐만 아니라 당대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영국이 해군의 군제를 정하고 어느 정도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을 엘리자베스 여왕조의 존 존 호우컨스(1532~1595) 경 등의 진력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조선수군은 이런 면에서도 그들보다 200 왜란에 있어서의 수군이 승전은 한 말로 전통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후기의 수군이 구각을 탈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침체해 버린 것도 너무 빛 잃은 전통에만 집착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제1도에 나타나 있는 조선후기 군선의 선체구조 방식은 조선학적 견지에서 살핀다면 조선초기의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조선후기에 간혹 군선의 조선방식을 논의하는 경우가 있을 때도 항상 임진왜란과 충무공의 선제를 상고하며 거기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할 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말엽에 국운이 기울어지자 그때까지 해수사영에 한 척씩 수척만 두었던 귀선을 십수 척으로 늘이고 또한 맹선조운을 본받아서 전선과 귀선에 의한 조운을 감행한 처사 등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참으로 조선의 수군은 세계의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함포를 구사하여 왜구를 물리치고 임진왜란을 당하여 역경에서 중적에 압승한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래 전통을 새롭게 살리지 못하고 쇠퇴해 버리고만 것은 매우 애석한 일로서 그 연유를 좀더 과제 자세히 규명하여 볼만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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