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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인의 독도 조업-김윤삼⋅박운학의 증언을 중심으로- = Port Hamilton people‘s Dokdo fishery-Focusing on the testimony of Kim Yun-sam and Park Un-hak-
저자
정태만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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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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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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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0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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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ople of Port Hamilton had long built ships on Ulleungdo Island, and had hunted of seals in Dokdo. But they left no record. In 1900, the Joseon government banned the shipbuilding on Ulleungdo island. In addition, by the Japanese woodcutter's reckless deforestation, wood was depleted on Ulleung Island. Then, the history of Port Hamilton people’s going over to the Dokdo has been erased.
The history became known to the public through media interviews of two old men of Port Hamilton in 1960’s. They testified they had been Dokdo until 1903, since 1895. This is consistent with the situation of the time before the Russo-Japanese War of 1904. They hunted for seals and gathered seaweed in Dokdo. Seal oil was a high-priced commodity for Port Hamilton people who were engaged in maritime trade.
Port Hamilton people said that Dokdo was 'two large island and several small island, and they ‘worked with boat between two large islands'. This statement is consistent with Dokdo’s true appearance and adds credibility of the statement.
Ulleungdo was a treasure island, and Dokdo was hereditary fishing grounds to Port Hamilton people. Not only before but after the Ulleungdo Immigration Order, it was the people of Port Hamilton who played a major role in defending the Ulleungdo and Dokdo. Port Hamilton people’s fishing activity after the Ulleungdo Immigration Order could be interpreted as effective control under international law.
It was also the Port Hamilton people who fought against the Japanese woodcutter on the vanguard. Frequent clashes with Japanese woodcutters drew attention from the central government, which contributed considerably in promulgating the Korean Empire Ordinance 41 of 1900.
거문도인들은 오래전부터 울릉도에서 배를 만들고 독도에서 물개 잡이를 했으나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거기에다 1900년 조선 조정의 금지령과 일본인 벌목공의 목재 남벌로 울릉도에서 배를 못 만들게 되자, 거문도인들의 독도 도항의 역사는 단절되어버렸다.
한동안 단절됐던 독도 도항의 역사는 1960년대 김윤삼 박운학 두 거문도 노인의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거문도인들이 독도에까지 과연 갔는지, 독도에 가서는 무엇을 했는지는 인터뷰 기사 검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윤삼과 박운학은 1895년부터 1903년까지 독도에 갔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러일전쟁(1904년) 직전의 당시 시대 상황과 모순됨이 없이 일치한다. 또한, 독도에 가서는 물개를 잡고 미역・전복을 채취했다고 증언했는데, 물개기름과 해구신은 해상교역활동을 하던 거문도인들에게는 고가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거문도인들이 본 독도 모습은 '큰 섬 두 개와 작은 섬 여러 개'였으며, '큰섬 두개 사이에 뗏목을 두고 작업을 하였다'는 증언은 실제 모습과 일치하여 신뢰성을 더한다. 독도에 나무가 있다는 기록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독도 연구자들 조차도 독도에 나무가 있다고 는 인식하고 있지 않은데도, 거문도인 박운학은 독도의 바위틈에 자란 나무를 꺾어서 울릉도에서 배를 만들 때 못으로 썼다고 증언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독도에 갔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울릉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에는 독도 바위틈에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거문도인들에게 울릉도는 보물섬, 독도는 조상 전래의 어장이었다. 울릉도개척령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주역은 거문도인이었다. 특히 거문도인들이 울릉도개척령 이후에 독도에서 조업활동을 한 것은 국제법적으로도 실효지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조선(造船)과 미역 채취에 대해서 세금을 납부하고, 일본인 벌목공의 목재남벌에 대항해서 선봉에서 싸운 것도 거문도인들이었다.
거문도인들의 일본인 벌목공과의 잦은 충돌은 조선중앙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내어, 1899년 황성신문의 '울릉도 사황' 보도와, 1900년의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있게 하는데 간접적으로 크게 기여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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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7-10-18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독도 · 평화연구소 -> 독도연구소영문명 : Dokdo and Peace Research Institute -> Dokdo Research Institute | |
2007-08-24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독도연구소 -> 독도 · 평화연구소영문명 : Dokdo Research Institute -> Dokdo and Peace Research Institute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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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8 | 0.38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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