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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평양의 사회주의 도시화 과정 - 도시구성과 건축양식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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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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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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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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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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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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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427년에 고구려의 수도가 된 이후 1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역사도시이며, 고려와 조선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에서 제2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48년 9월 9일 이후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의 수도가 되었다. 사회주의국가의 수도인 평양은 자본주의 국가와 달리 중심상업 및 업무지구가 존재하지 않으며, 평양의 상징적인 중심공간은 광장과 공공문화시설로 구성되었으며, 주거지는 직주근접을 원칙으로 계획되었고, 간선도로의 주경관은 집합주택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도시구조와 도시경관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도시 평양이 일제강점기까지 유지해왔던 모습이 아니다. 천년 넘게 유지되었던 역사도시의 모습은 일제강점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1948년 이후 사회주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변화의 방향이 달라졌으나, 현재의 물리적 도시구조의 틀은 6.25전쟁 이후 구축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옛 평양성을 중심으로 도시구조와 건축 측면에서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도시 평양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사회주의 도시로 변모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역사도시 평양의 심장부인 평양성은 사회주의체제 성립이후 불과 반세기만에 사회주의 체제를 표상하는 도시의 심장부로 변모되었다. 변화의 시작은 대한제국의 출발과 함께 지어진 풍경궁의 건설과 철도 부설과 함께 시작된 평양탄광의 개발이었고, 일제강점하에서 진행된 한반도의 병참기지화 속 공업화의 일환으로 전개된 평양성 밖의 공업지구 조성을 통한 시역의 확장 그리고 해방 후 사회주의 정권의 출범이었다. 해방 직후 실시된 소련의 군정 하에서 사회주의 도시계획과 건축이 부분적으로 이식되었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6.25전쟁으로 전파된 평양의 복구과정에서 적용된 사회주의 도시계획과 전쟁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도시계획이었다. 이 과정에 6.25전쟁전 소련과 동유럽에서 수학한 김정희를 비롯한 건축인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전재복구과정에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복구지원 과정에서 평양의 중심부와 이식된 유럽의 중정형블럭의 공동주택과 신고전주의건축양식의 문화시설에 전통건축 어휘와 장식이 일부 사용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북의 인민들에게는 이질적이었다. 북의 도시와 건축이 동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전재복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경제적 기반이 확보되고, 1956년 이후 김일성 체제가 확고해지고 ‘우리식대로’를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면서다.
시작은 전통건축양식을 채택한 공공문화시설이었고, 전통건축형식에 인민들의 요구를 담은 현대조선식건축인 민족건축형식이 1960년에 등장해서, 소련과 동유럽에서 이식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이 사회주의리얼리즘의 북한식 버전으로 대체되었다. 도시구조와 경관측면에서는 중정형 블록의 공동주택이 1970년대 본격화된 도심재개발사업으로 해체되고, 오늘날 초고층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하는 평양의 도시경관이 형성되었다. 마지막으로 1982년 대동강과 김일성광장을 사이에 두고 인민대학습당과 주체사상탑이 건설되면서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던 대동강과 금수산에 의한 자연의 질서는 새로운 상징적 경관축으로 대치되었다.
Pyongyang is a historical city with a history of more than 1600 years since becoming the capital of Goguryeo in 427. And during the period of Goryeo, Joseon, and Japanese colonial rule, it had a status as the second city on the Korean peninsula. After September 9, 1948, Pyongyang became the capital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Unlike capitalist countries, Pyongyang, the capital of a socialist state, does not have central commercial and business districts, and the symbolic central space of Pyongyang is composed of a plaza and public cultural facilities, and integration of work and residence. The cityscape and skyline is formed by multi-family housing. These urban structures and urban landscapes are not what the historical city of Pyongyang, the capital of Goguryeo, maintained until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shape of the historic city, which had been maintained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began to change rapidly along with the Japanese occupation, and the direction of change based on the establishment of the socialist system after 1948, but the current urban structure was established after the Korean War. In this study, how the historical city of Pyongyang was transformed into a socialist city in terms of urban structure and architecture was discovered.
The beginning of the change was the construction of the second Palace, Poonggyeonggung built by the Korean Empire and the development of the Pyongyang coal mine, which began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railway. and the expansion of the city area through the creation of an industrial district outside Pyongyang, Under the colonial rule, the east part of Pyongyang was developed as industrial area based on logistics base for military industry. After liberation, with the start of the socialist regime, the direction of urban development has changed. Socialist urban planning and architecture were partially transplanted in Pyongyang with the support of the Soviet . And the socialist urban planning was fully applied during the restoration process of Pyongyang after the Korean War and urban planning to protect the city from airraid during war was important in post-war restoration. In this process, there were roles of architects, including Kim Jeong-hee, who studied in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In the process of reconstruction of pyongyang some of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vocabulary and decorations were used in the public cultural facilities in neoclassical architectural style. However, it was unfamiliar to the people of the North. The cities and architecture in North Kora began to out from the influence of neoclassical architecture when the post-war reconstruction was successfully completed, the economic foundation was secured. The Kim Il-Sung regime was firmly established after 1956, and “our way” was put at the fore of the policy. The beginning was a public cultural facility that adopted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style, and the ethnic architectural style based on a modern Korean architectural style that contained the demands of the people in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style in 1960s. The neoclassical architectural style transplanted from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was replaced by the North Korean style of socialist realism. The national architectural style was completed at the People’s Grand Library in 1982. In terms of urban structure and cityscape, the courtyard block apartments were dismantled by an urban redevelopment project in earnest in the 1970s, and skyline and cityscape was formed with the skyscrapers. Finally,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People’s Grand Library and the Juche Tower between the Daedong River in 1982, the symbolic urban landscape of North Korean socialist urban architecture was comple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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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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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3 | 0.63 | 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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