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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일기자료를 통해본 사노비의 존재형태 -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역중일기(曆中日記)≫(1735∼1786)를 중심으로 - = The Status of Private Slaves Found in Journals From the 18<sup>th</sup> Century - Focused on Yeokjoongilgi (曆中日記, 1735∼1786) written by Heungwon Choi (百弗庵 崔興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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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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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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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97-138(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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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百弗庵 崔興遠(1705∼1786)이 남긴 방대한 ≪曆中日記≫(1735∼1786)를 통해 대구 경주최씨가의 사노비 존재형태를 검토한 것이다. ≪역중일기≫에 등장하는 노비 실수는 대략 264명이 된다. 또한 호구자료(호구단자/준호구/대구부호적)에서도 많은 노비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실수는 300여 명이 된다.
호적자료의 300여 노비 가운데 한 식년이라도 외거나 앙역한 경우는 각기 181명과 100명이다. 또 한 번이라도 도망한 경우는 84명에 이른다. 이것은 외거(납공)와 앙역, 또는 도망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외거노비의 일부는 앙역으로 차출되었고, 이들 가운데 또 일부는 도망으로 존재했다.
납공노비들은 주로 가족단위로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가족 가운데 앙역으로 차출되거나 도망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해체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거상태에서 차출되어 앙역노비가 된 경우는 40.8%에 이르렀다. 도망노비는 앙역이나 외거에서 모두 발생했으나 앙역에서의 발생 빈도가 더 높았다.
≪역중일기≫에 등장하는 노비 264명 가운데 동 시기의 호적자료에서 확인되는 노비는 46.9%에 불과했다. 앙역노비들은 거주형태에 따라 두 유형으로 존재하였는데, 하나는 상전가의 행랑채에서 기거하면서 취사를 함께 하는 존재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집에서 상전가를 왕래하는 존재들이다. 전자를 在家仰役, 후자를 自家仰役이라 할 수 있다. 앙역이라 하여 거주지가 반드시 상전가와 同里일 필요는 없었다. 20∼30여리 떨어진 인근의 他面里에 거주하면서 수시로 상전가를 출입하기도 하였다. 아마 대략적이나마 立役 일수가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노비들의 도망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최씨가의 노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호적자료에서의 도망은 앙역이나 외거에 관계없이 광범하게 행해졌지만, 일기자료에서 확인되는 도망노비의 존재는 모두가 앙역에서 일어났다. 노비들의 빈번한 도망 못지않게 스스로 돌아오거나 잡혀오는 경우도 많았다. 노비들의 도망처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앙역노비들의 身役은 무한정으로 착취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헌신과 복종, 또는 노동력 제공에 대한 보답이 뒤따라야했다. 月料가 지급되었고, 과외의 활동이나 성과에 대해서도 특별한 보상이 주어졌다. 무엇보다도 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사정에서 노비와 상전가와의 관계는 불완전한 것이라 하더라도 상호 보험적 또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e status of private slaves owned by the Gyeongju Choi clan in Daegu, South Korea through Yeokjoongilgi (曆中日記), a massive volume of journals written by Heungwon Choi (최흥원; 崔興遠; 1705∼1786), whose pen name was Baekbulam (백불암; 百弗庵). The actual number of slaves who appeared in Yeokjoongilgi was approximately 264. In addition, a large number of slaves were identified in other documents related to household registers (hogudanja, junhogu, Daegubu hojeok), and the number was around 300.
Out of the 300 slaves found in the household registers, the number of Oegeo (外居) slaves who were out-resident slaves and Angnyeok (仰役) slaves who directly provided labor living within or near the master’s house at least every third year was 181 and 100 respectively. The number of those who ran away (fugitive slaves) at least one time was 84. The numbers indicate that slaves who worked as an Oegeo slave (Napgong (納貢) slaves who paid tribute taxes), or Angnyeok slaves or fugitive slaves did not exist separately. In other words, some of Oegeo slaves were recruited as a Angnyeok slave, and some of them, in turn, were found to run away.
Out of the 264 slaves who appeared in Yeokjoongilgi, only 46.9% were identified in household registers during the same period. Angnyeok slaves were divided into two types depending on their residence: those who stayed in houses for servants within their master’s house to cook, and those who lived in their own house and commuted from their house to their master’s house. The first type can be called ‘Jaega Angnyeok (在家仰役)’ slaves (live-in slaves) and the second type, ‘Jaga Angnyeok (自家仰役)’ slaves (house-owning slaves). Angnyeok slaves did not necessarily live in the same village of their master. Some frequently commuted to their master’s house, living in other villages around 7.86∼11.79 Km away from it. There could be an certain number of days to provide labor to their master (Ipyeok, 立役).
The labor of Angnyeok slaves was not exploited unlimitedly. Their devotion, obedience and labor had to be rewarded. Monthly payments were paid to them, and their extra activities or performance were compensated with special rewards. Above all, their livelihood had to be guaranteed. In this regard, the relationships between slaves and their master’s family seem to be mutually-insured or mutually-reciprocal, although im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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