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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과 왕세정(王世貞) = Hŏ Kyun and Wang Shiz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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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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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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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46(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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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38세 되던 1606년(병오, 선조39) 원접사 종사관으로서 주지번을 만나 명나라 문단에 대해 깊이 이해하면서 왕세정 등 복고파의 문학 성과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다. 허균은 왕세정 등 복고파가 성당시와 한위악부를 모범으로 삼은 것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스스로 「속몽시(續夢詩)」에서 악부를 제작했다. 또 허균은 왕세정이 「정희부(靜姬賦)」와 「후정희부(後靜姬賦)」에서 불우의 심사를 노래한 것에 공감했으며, 왕세정의 열선전전(列仙全傳)을 열람하고 자유분방한 의식에 동조하여 「열선찬(列仙贊)」을 지었다. 그러나 허균은 왕세정의 문학을 전범으로 숭앙하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왕세정의 열선전전은 581선인의 고사를 수록했는데, 허균은 신선이 아닌 인물이나 허탄한 신선설의 주인공을 모두 배제했다. 또한 허균은 명나라 말 제자백가에 대한 관심의 고조에 호응하여 스스로 제자백가의 독후문(讀後文)을 남기되, 왕세정의 독서후(讀書後)는 참조하지 않았다. 1615년(광해군7) 9월부터 다음 해 3월 초까지 동지겸진주사행 부사로서 중국에 있으면서 왕세정 편집으로 알려진 검협전(劍俠傳)을 탐독하고 왕세정의 「검객편(俠客篇)」과 「유협편(游俠篇)」을 읽고 그 원념(怨念)의 세계에 공감했다. 왕세정은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냈지만 허균은 왕세정의 사학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것은 왕세정의 역사 서술이 조선의 종계변무에 관해 불온한 기록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허균은 명대 중엽 이후의 박물고증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왕세정의 필기들을 크게 활용하지 않았다. 을병조천의 때에 허균은 양명학적 사유와 거리를 두고자 했고, 사념을 끊고 욕심을 다 없애 원명(圓明)의 깨끗함을 깨우치겠다고 다짐했으며, 결국 존덕성을 위해서는 도문학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중용의 가르침을 재확인했다. 허균은 왕수인의 치양지가 존덕성의 방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하되, 도문학을 통하지 않고는 존덕성을 충분히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가 특히 허균으로 하여금 왕세정의 시문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게 했을 것이다.
더보기Hŏ Kyun, by the age of 25(1593), had compiled his literary criticism Haksanch'odam, although he did not have a deep understanding of the Ming archaist school, including Wang Shizhen. However, in 1606(the 39th year of King Sŏnjo’s reign), he met Zhu Zhifan as a secretary of the reception envoy and gained a rich understanding of Ming literature. This experience led Hŏ to develop an interest in the literary achievements of the archaist school. He agreed, to some extent, with the archaist school's adoption of High Tang poetry and Han dynasty Yuefu as literary models, and in particular, he composed a Yuefu as a part of "Sokmongshi(The Poems of a Continuing Dream)." He was also interested in Wang's unconventional thinking. For example, Hŏ sympathized with the sense of tragedy in Wang's "Jingji fu[The Rhapsody of a Silent Concubine]" and "Xu Jingji fu(The Sequel)." He also read Wang's Liexian Quanchuan (The Complete Biography of Transcendent Hermits) and wrote "Yŏlsŏnch'an(The Panegynic for Transcendent Hermits)." However, Hŏ did not fully follow Wang’s literary style. For example, Wang's Liexian Quanchuan recorded stories of 581 hermits in total, but Hŏ excluded all “non-transcendent and the protagonists of unreliable stories, demonstrating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authors’ thought processes. In addition, Hŏ became highly interested in the Hundred Schools of Thought in the late-Ming era and wrote a postscript but did not refer to Wang’s Dushufu(The Postscript to Readings). From September 1615(the 7th of Kwanghaegun) to early March of the following year, when he was in China as a deputy envoy of the winter solstice, Hŏ read Wang’s compilation, Jianxiachuan(The Biography of Gallant Swordsmen), in particular, "Xiakepian(The Chapter for Chivalrous Fighters)" and "Youxiapian(The Chapter for Wandering Fighters)," sympathizing with its theme of deep-seating grudges. However, this was not a thorough reading of Wang's literary works.
Although Wang made important contributions to historiography, Hŏ did not pay attention to it, perhaps because his viewpoint contained disturbing accounts of a false charge against the Chosŏn dynasty's royal lineage. Hŏ did not pay much attention to the evidential scholarship from the mid-Ming era; thus, he did not adopt Wang's essays. During the envoy trip from 1615 to 1616, Hŏ did not agree with Yangmingism and vowed to disregard trivial thoughts and greed in order to awaken the purity of his original mindstate, eventually reaffirming the teaching of The Doctrine of the Mean that one must follow the path of study and inquiry to preserve their virtuous nature. Hŏ ultimately evaluated Wang Shouren's idea of nurturing innate knowledge as a way to preserve virtuous nature but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studying and inquiring. This ideological shift may have led Hŏ to be particularly selective in his acceptance of Wang Shizhen's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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