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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澤榮과 中國 近代文壇의 疏通 = Kim Taek-yeong s correspondence with the Chinese modern literary world: A focus on his refugee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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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explores Kim Taek-yeong s communications with Chinese litterateurs while he was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during his period as a refugee in China; it will also discuss the status his literature has achieved in
the modern Chinese literary world. I assert that Kim was widely regarded as a refugee poet from Korea at that time by examining 61 pieces of literary material published in China between 1905 and 1949; here, I also make the
case that Kim was considered a refugee poet in the modern Chinese literary world. Then I clarify how litterateurs from the Chutun Poetry Club who played a key role in the formation of Kim’s image as a refugee poet started
to pay attention to Kim’s refugee poems, and then proceed to provide an in-depth analysis of his poems.
Litterateurs from the Chutun Poetry Club wrote several poems related to Kim Taek-yeong’s anthology and started to consider Kim as a refugee poet in their 21st poetry activity held in 1908. These poems were recorded in
The Poetry of the Chutun Poetry Club(著涒吟社詩詞鈔). Moreover, nine pieces of Kim’s poems were introduced in Yuan Zu-guang’s Lvtianxiangxueyi Poetry Talks(綠天香雪簃詩話). Sun Xiong, who was also a member of the
Chutun Poetry Club, mentioned Kim’s poems with relevant commentary in This paper explores Kim Taek-yeong s communications with Chinese litterateurs while he was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during his period as a
refugee in China; it will also discuss the status his literature has achieved in the modern Chinese literary world. I assert that Kim was widely regarded as a refugee poet from Korea at that time by examining 61 pieces of literary
material published in China between 1905 and 1949; here, I also make the case that Kim was considered a refugee poet in the modern Chinese literary world. Then I clarify how litterateurs from the Chutun Poetry Club who
played a key role in the formation of Kim’s image as a refugee poet started to pay attention to Kim’s refugee poems, and then proceed to provide an in-depth analysis of his poems.
Litterateurs from the Chutun Poetry Club wrote several poems related to Kim Taek-yeong’s anthology and started to consider Kim as a refugee poet in their 21st poetry activity held in 1908. These poems were recorded in
The Poetry of the Chutun Poetry Club(著涒吟社詩詞鈔). Moreover, nine pieces of Kim’s poems were introduced in Yuan Zu-guang’s Lvtianxiangxueyi Poetry Talks(綠天香雪簃詩話). Sun Xiong, who was also a member of the
Chutun Poetry Club, mentioned Kim’s poems with relevant commentary in History of Poetry in the Reigns of Four Emperors Daoguang, Xianfeng, Tongzhi, and Guangxu(道咸同光四朝詩史). Although Kim did not have
direct contact with these litterateurs, his poems were introduced to the Chutun Poetry Club by his friends in Nantong(南通), China. Here, it is of substance to note that Kim shared many of the same feelings with the
litterateurs from the Chutun Poetry Club as both Korea and China were immersed in events of great national turmoil.
Four of Kim’s poems included in Poems of Pyongyang(平壤長句), which were selected as refugee poems in Yuan Zu-guang’s Lvtianxiangxueyi Poetry Talks, in fact, introduced the history and customs of Pyongyang
while conveying distress and sorrow about not being able to realize his dream. Besides, poems regarding the history during the period between Japan–Korea Treaty of 1876 and Japan–Korea Treaty of 1905, in which Kim embodied his concern about his homeland, anguish and guilt as a poet in exile, and animosity against imperialistic Japan, can be evaluated as excellent refugee poems. During the period between 1876 and 1910, Korea and Qing Dynasty suffered the same fate under the weight of Japanese occupation. Both countries’ litterateurs who were concerned about their
homelands communicated and shared empathy with each other through Kim’s refugee or patriotic poems. In this regard,
본고는 滄江 金澤榮(1850~1927)이 23년이나 되는 장기간의 중국 망명기간 동안 활발한 문학 활동을 통해 당시의 중국 문단과 어떻게 소통했으며, 그의 문학이 중국 근대문단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했는가를 밝히고자한 것이다. 이를 위해 1905~1949년에 간행된 중국 공식간행물 가운데 김택영을 소개한 자료 61종을 조사・분석한 결과 김택영이 당시 중국문단에서
한국의 ‘유민시인’으로 널리 평가받았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김택영에게 ‘유민시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던 문단적 배경과 그 실상을 밝히고자 유민시인 이미지의 형성에 선도적 역할을 한 북경著涒吟社의 문인들이 김택영의 ‘유민시’를 주목한 경위와, 그들에 의해 ‘유민시’로 평가된 김택영 작품들의 실상을 자세히 분석하였다.
저군음사의 문인들은 1908년에 조직한 제21회 시사활동에서 김택영의 시집을 주제로 창작한 詩・詞들에서 김택영을 유민시인으로 읊었고, 이 작품들을 著涒吟社詩詞鈔 (1908)에 수록하였다. 그리고 저군음사의 기관지인 國學萃編 (第12期, 1909)에 연재된 袁祖光의 綠天香雪簃詩話 에서 김택영의 유민시 9수를 소개했으며, 같은 저군음사의 구성원인 孫雄이 道光~光緖 연간의 漢詩史를 정리한 道咸同光四朝詩史 (1910)에서 녹천향설이시화 에 선록된 김택영의 유민시 및 그에 붙인 논평을 전재하였다.
김택영은 이 문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는 않았으나 南通에서 사귄 지역문인들을 매개로 그의 시집이 저군음사의 문인들에게 소개되었는데, 특히 그의 유민시가 원조광・손웅을 비롯한 청나라 말기에 정세적 위기를 절감한 저군음사의 문인들의 공감을 받았던 것이다.
원조광이 소개한 김택영의 유민시 중 <平壤長句>(1875)라는 연작시에서 선록한 4수의 시는 사실 김택영이 평양의 역사와 풍물을 읊으면서 자신의 불우함에 대한 비분을 기탁한 것이다. 그 밖에 강화조약 체결 후, 을사조약 체결까지의 한국 역사를 반영한 시들은 김택영이 역사가로서 나라의 운명에 대해 가진 깊은 근심과 책임감, 일제에 대해 품은 강한 적개심을 시로
형상화하여 ‘詩史’의 역할을 한 훌륭한 유민시로 평가할 만하다. 이처럼 1876~1910년 조선과 청나라가 공동의 위기에 빠져 운명을 같이 했던 시기, 나라의 위기를 근심한 양국 문인이 ‘유민시’를 통해 서로 교감하고 소통했던 점에서 김택영의 유민시 또는 우국시가 가진 의미를 새롭게 규명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이상과 같은 본고의 논의는 중국 망명기 김택영의 교유활동을 비롯한 그의 ‘행적’을 복원하는 데 그쳤던 기존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김택영의문학이 한・중 문학교류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밝힘으로써 김택영의 문학사적인 위치를 재조명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김택영의 ‘우국시’의 평가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한・중 문학교류사의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시도가 되었다고 본다.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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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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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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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7-2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Http://Www.Daedonghanmunhak.Co.Kr -> http://www.daedonghanmun.or.kr/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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