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고려말 남경과 친원세력의 동향 -금석문을 중심으로- = Pro-Yuan Forces in Nanjing during the Late-Goryeo Dynasty -Based on inscriptions-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31(27쪽)
KCI 피인용횟수
3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The bronze bell at the Boamsa Temple was cast and dedicated by Ki Pyung-jang, who is believed to be Ki Chul, an older brother of the Ki Empress (Kihwanghoo). According to ‘The Record on Mission of Ki Pyung-jang (Ki Pyung-jang bongsanokseo)’, Ki Chul received an order from the Yuan emperor, and was sent to Goryeo as bunhyangsa, in charge of incense burning at temples. This happened in 1349, the first year of King Chung-jeong’s reign, and the kichuk year of the Yuan’s jijeong reign.
Previously, the inscription on the bronze bell was read as eulchuk, and thus the bell was thought to have been cast in 1325. However, circumstances suggest that the then-bunhyangsa Ki Chul mistakenly carved eulchuk instead of kichuk to indicate the year.
Meanwhile, Chae Hajung, who dedicated the incense burner at the Jungheungsa Temple, was an influential pro-Yuan politician. He was put on the list of disloyal servants in ‘The History of Goryeo (Goryeosa).’ Chae Hajung wielded political power, taking advantage of conflicts between the king of the Goryeo Dynasty and simwang that was appointed by the Yuan emperor. He was a very powerful politician until he became involved in a treason and killed. The fact that such a powerful man dedicated an incense burner at the Jungheungsa Temple in the Nanjing region reveals the importance of the temple. It also had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Buddhist monks at the Jungheungsa temple participated in ideological exchanges with the Yuan dynasty by copying Buddhist scriptures and interpreting them. Given this, the making of the incense burner was a Buddhist service that was laden with political intentions of Chae Hajung, a powerful politician of the time, since the act harbored both a wish for a long life of the Yuan emperor and the Goryeo king, as well as a personal wish for attaining Buddhahood.
보암사동종은 기평장이 주조하여 시납한 것인데, 고려말 자료에서 단 두 명의 기평장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공민왕대에 고려에 사신을 보낸 北元의 기평장이 남경에 와서 동종을 주조했을 개연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보암사동종을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기황후의 오라비인 奇轍로 판단된다. 「기평장봉사록서」에 의하면 기철은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고려에 焚香使로 파견되었는데, 그 해가 바로 至正 기축년인 충정왕 1년(1349)에 해당된다. 「기평장봉사록서」에서 기철은 평장사 덕성대군으로 지칭되었는데, 당시 고려는 중서문하성 체제가 아니어서 평장사 직함이 없으므로 덕녕공주가 왕후와 기철에게 정동행성을 임시로 감독하도록 했을 때 기철이 정동행성 평장사 직함을 띤 것으로 판단된다.
종전에 보암사동종은 ‘을축’이라는 명문으로 인해 1325년에 주조된 것으로 파악되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 을축이 아니라 기철이 분향사로 파견된 己丑이 잘못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고려사』를 비롯한 고려시대 史料에서 ‘乙’과 ‘己’가 혼동되거나 잘못 판각된 사례로 미루어 볼 때, 보암사동종의 조성연대는 1325년의 乙丑이 아닌 1349년 己丑으로 판단된다.
중흥사향로의 명문 역시 고려말 친원세력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중흥사향로 제작의 단월인 채하중은 친원세력가로서 『고려사』 열전 간신전에 입전된 인물이다. 채하중은 고려국왕과 심왕의 알력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모반에 연루되어 사망할 때까지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하였다. 이러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채하중이 남경 지역의 사원인 중흥사에 향로를 시납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중흥사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중흥사에 주석한 승려가 寫經과 불경의 해석 등을 통해 원나라와의 사상적 교류에 참여한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원나라 황제와 고려 국왕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목적과 개인적인 성불의 염원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중흥사향로의 제작은 채하중이라는 권력층의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佛事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27 | 0.27 | 0.3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5 | 0.33 | 1.024 | 0.04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