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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창경원’의 운영과 그 성격 = Operation and personality of Changgyeongwon Garden(昌慶苑) in th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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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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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3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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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research examines the operation of Changgyeongwon Garden(昌慶苑) in the 1910s. And through this, one aspect of the Japanese Empire colonial rule was understood. Existing research on Changgyeongwon Garden has generally been done only for its appearance since the 1920s. Because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turned to so-called "cultural rule" and encouraged tourism or leisure activities under an active policy.
In the 1920s, culture was enjoyed in various fields, and Changgyeongwon Garden became a famous modern recreation spot. However in the 1910s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ctively expanded the facilities of Changgyeongwon Garden. And I was able to see the way of propagating it through “Maeil Shinbo(每日申報)”. Since the 1910s, when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general government established the logic of justification for colonial rule and established the ruling system, it noticed Changgyeongwon Garden as a tourism or leisure activity place. And they was to use Changgyeongwon Garden as a kind of cultural policy.
Changgyeongwon Garden was operated by Yiwangjik(李王職). However All of Yiwangjik's staff and budget were supervis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Changgyeongwon Garden belonged to Yiwangjik, but was actually govern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Starting in the early 1910s, Yiwangjik tried to change Changgyeongwon Garden to an ideal park by expanding facilities, purchasing animals and plants, and installing trams. They also planted a cherry blossoms, and Changgyeongwon Garden has become a popular place for flower viewing since the mid-1910s. This series of measures was intended to transform the facility that can show off when foreigners visited the Colonial Joseon. At that time, the largest botanical garden in the East Asia was a modern facility that would be appreciated by anyone. This facility became a medium to understand imperialism of Japan to colonize Korea when viewed from the perspective of foreigners and Colonial Joseon Koreans.
We can confirm the inten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through Changgyeongwon Garden spectators in the “Maeil Shinbo(每日申報)”. Most of the articles related to the visitors are about the gentry such as Sunjong(純宗), Yi royal-family(李王家), and senior management. They were enjoying Changgyeongwon Garden, a beautiful modern facility where they can see flowers blooming even in the cold winter. At the time of the Japanese imperialist rule, the appearance of Changgyeongwon Garden was peaceful. Changgyeongwon Garden was not a destroyed palace but a symbol of a new civilization recognized by Yi royal-family(李王家). The observation groups visited Changgyeongwon Garden and went back to them hometown and advertised this.
Changgyeongwon Garden was a good place to relax and see flowers blooming regardless of the season. Also, sometimes they could see Sunjong(純宗) like an event. Colonial Joseon Koreans were criticized for setting up a garden in the palace. However through various articles, they may have changed their minds to they want to go there once.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made the foundation of the colonial policy in the 1910s and used Changgyeongwon Garden as a kind of 'cultural policy'.
본고는 1910년대 창경원의 운영현황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통해 일제 식민지배정책의 일면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창경원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대체로 1920년대 이후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주지하다시피 3ㆍ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소위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으며, 적극적인 정책 하에 관광 혹은 여가생활이 장려되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 향유가 이루어졌고, 창경원 역시 손꼽히는 행락지로 자리잡아갔다. 그러나 이른바 무단통치를 자행하던 1910년대에도 일제는 적극적으로 창경원 시설을 보완ㆍ확장하였으며, 『매일신보』를 통해 그것을 선전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식민 지배에 대한 정당화 논리를 만들고 지배체제를 구축해 나가던 1910년대부터 창경원을 관광 혹은 여가활동지로서 주목하였으며, 일종의 문화정책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창경원의 운영 주체인 이왕직의 직원 및 세입ㆍ세출은 모두 조선총독부에서 관할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창경원은 이왕직에 소속되었지만 실제로는 조선총독부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왕직은 1910년대 초반부터 시설 확충과 동식물의 구입, 전차 부설 등을 통해 창경원을 이상적 공원으로 탈바꿈하고자 노력했다. 또 창경원 개원 초기에 식재된 벚나무는 1910년대 중반부터 만발하여 대표적인 꽃놀이 장소로 변화해갔다. 이는 재조일본인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우선적으로 외국인들이 식민지 조선에 방문했을 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설로 바꾸기 위함이었다. 당시 동양최대 크기의 식물원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근대 시설이었다. 창경원은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나 조선인들이 보았을 때나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는 기제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유일한 언론매체였던 『매일신보』에서 관람객의 모습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관람객 관련 기사는 순종과 순종비 등 왕실과 상류층 관련 기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만발한 꽃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근대 시설인 창경원을 즐기고 있었다. 일제의 무단통치가 자행되는 시기에 창경원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울 따름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창경원은 파괴된 궁궐이 아닌 이왕가가 인정한 ‘새로운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새로운 근대 시설인 창경원에 다녀간 지방의 시찰단들은 각지로 돌아가 이 모습을 선전했다.
시설 확충에 노력하거나 이러한 관람객 양상을 볼 때 창경원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창경원은 계절과 관계없이 만발한 꽃을 볼 수 있고 휴식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또한 가끔은 이벤트처럼 순종이 산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당초 식민지 조선인들은 궁궐에 동식박물관이 설치되는 모습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창경원과 관련한 다양한 기사를 통해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총독부는 1910년대 식민지배정책의 기반을 다지며 일종의 문화 정책으로 창경원을 활용한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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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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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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