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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왕대 사찰 조영을 통해 본 왕권의 변동과 왕제 혜 = A Study on Transition of Kingship and Prince Hye Revealed through Establishing Buddhist Temples in the Region of King Wideok Baekje
저자
강종원 (한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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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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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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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5-46(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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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puts an in-depth study on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Buddhist monasteries for emperor tombs and Wangheung-sa during the reign of King Wideok, the transition of royal power and governance of King Wideok, and the background of Hye’s succession to the throne. Chang, who led the great war against Silla in 554, faced a political crisis due to the death of King Seong of Baekje and was defeated in the Gwansanseong battle. However, he dispatched Hye, a potential rival as a crown prince, as a special envoy to Japan to remove the possibility of conflict in succession to the throne. He managed internal and external confusion, such as defeating Goguryeo's invasion and finally ascending the throne. However, he could not rule his reign actively due to the influence of the great noble families in the early days. King Wideok tried to establish political stability by rallying King Seong's other royal family members by constructing Buddhist monasteries for emperor tombs. However, he failed to strengthen his absolute royal authority because the originator was King Seong’s daughter, Princess Hyeong. However, King Wedeok began to realize his political strategies through foreign policy. In particular, he maintained a hard-line approach against Silla by keeping Goguryeo constrained through exchanges with the Northern Dynasties. He also expressed his interest in the old Gaya by restoring his estranged relationship with the Japanese. The death of the eldest son of King Wedeok caused a change in the royal authority, and King Wedeok tried to establish a ruling order monarchy oriented and to solidify the legitimacy of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through the construction and Sarira ritual for the dead princess. In October 577, he attempted to strengthen his royal authority by declaring war against Silla. However, the great noble families who had opposed the war began to influence authority significantly again when he lost the battle. King Wedeok appointed his younger brother Hye to Taejapyung to overcome his political crisis. The political situation was rapidly reorganized Hye oriented when even foreign diplomacy for Japan had failed due to the Illa incident in 583. As Hye took control of the political situation, he was able to expel the young son of the dead prince and prince Ajoa and established the political foundation for him to succeed to the throne.
더보기이 글에서는 위덕왕대 능사와 왕흥사 조영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의미, 위덕왕의 국정운영과 왕권의 변동과정, 그리고 혜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 배경 등을 살펴보았다.
554년 신라전을 주도한 창은 성왕의 전사와 관산성 패전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태자의 신분으로 잠재적 경쟁자였던 혜를 왜에 특사로 파견하여 왕위계승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고구려의 침략에 대한 격퇴 등 대내외적인 혼란을 수습하고 즉위할 수 있었다. 다만 재위 초기에는 대성귀족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적극적인 국정운영을 펼치지는 못하였다. 위덕왕은 능사의 창건을 통해 성왕계를 결집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였으나 발원주체가 성왕의 딸인 형공주였다는 점에서 왕권강화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위덕왕은 대외정책을 통해 자신의 정치를 구현해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 북조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고구려를 견제하면서 신라에 대한 강경책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소원했던 왜와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옛가야에 대한 관심도 드러냈다.
그런데 적장자의 사망으로 왕권에 변동이 생겼다. 이에 위덕왕은 ‘亡王子’를 위한 원찰의 조영과 사리의식을 통해 왕권중심의 지배질서를 확립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577년 10월 신라와의 대규모 전쟁을 추진함으로써 왕권강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대성귀족의 영향력이 다시 확대되었으며, 이러한 정국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위덕왕은 동생 혜를 太佐平에 임명하였다. 그렇지만 583년 日羅사건으로 대왜외교마저 실패하게 되자 정국은 혜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함에 따라 차기 왕위계승권을 가진 ‘亡王子’의 어린 아들과 왕자 아좌를 축출하고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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