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일기를 통해 본 조선시대 妓女의 立役과 運用 = Mean Duty and Military Service of Gisaeng in Joseon Era Seen from Diary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주제어
KDC
810.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79-112(34쪽)
KCI 피인용횟수
13
제공처
소장기관
본 논문은 16세기에서 19세기 초반까지의 일기자료를 통해 妓女의 立役과 기녀제의 運用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기녀는 조선시대에 춤추고 노래하고 성을 제공하던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조선의 國役體系속에서 역을 담당하던 자들이다. 기녀는 妓籍(官案)에 등록되어 國役에 편성된 공적인 존재로 최하층 여성인 동시에, 최고의 예능인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였다.
기녀를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들의 소속처에 따라 장악원에 속한 京妓와 營鎭을 비롯한 地方郡縣에 소속된 官妓로 구분하여야 한다. 기녀의 규모는 국가의 여악정책과 성리학의 심화정도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데, 京妓는 100~300명에 이르렀으며 官妓는 20~60명 정도였다. 기녀제도는 연산군대에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되었으나, 인조반정을 계기로 여악이 정면으로 비판받게 되면서 京妓가 혁파되자(1623) 지방관아의 관기만 남게 되었다.
기녀의 충원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官婢중에서 姿色과 才藝를 기준으로 선발하게 되어 있었다. 관기는 넓은 의미의 관비로 관노, 관비, 기녀가 지방관아의 官案에 함께 등재되어 있다. 이들은 公的인 존재로 일정한 역을 담당하는데 이는 妓役이라 하는데, 기역은 16세에서 50세까지 담당하였다.
京妓는 寺奴婢와 마찬가지로 立番制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3인이나 4인이 하나의 條를 이루어 일정한 기간씩 돌아가면서 입번하였다. 즉 3인1조인 경우 한 사람이 6개월을 立番하면 나머지 12개월은 非番으로서 쉬게 되는데 결국 京妓의 奉足이란 非番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번 기간에는 개인적인 사설 영업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였을 것이다. 「목재일기」에 존재하는 妓家가 기녀가 운영하는 사설영업장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녀는 16세부터 역을 담당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뽑아 敎房을 통해 교육을 받은 다음 현장에 배치되었다. 기녀 중의 우두머리를 行首妓라 하는데, 행수기는 기녀의 대표성을 지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창구역할을 담당하였다.
기녀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본래의 이름을 鄕名이라 하고 나중에 붙여진 이름을 妓名이라 하였다. 기명은 일종의 예명인 것이다. 유희춘이 자신과 관계한 기녀를 향명과 기명을 섞어서 부른다는 사실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향명은 그야말로 투박한 관비병이며, 기명은 화려하고 성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특성을 가진다.
기녀는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혼인 이후에도 이들의 役은 지속되어서 혼인은 해소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기녀가 상대하는 계층이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우 천시되어 같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기녀가 되어 처음으로 성관계를 맺는 상대를 ‘上笄’ 라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성년식과 같은 것으로, 이들에게는 특별히 기억할만한 일이었다.
관기와 관비는 담당하는 기능과 역할을 공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기와 관비 사이에도 일정한 위계가 존재하였으며, 기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관비로 降定될뿐만 아니라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죄목은 자신의 본업을 충실히 거행하지 않은 데에 있었다.
3) 관기의 대표적인 업무 중의 하나가 女樂으로 연회에서 춤추고 노래하여 흥을 돋우는 것이다. 『명종실록』이 완성되어 실록봉안사가 전주에 내려왔을 당시에도 기녀가 참석한 성대한 연회가 며칠에 걸쳐서 지속되었다. 지방관이 이러한 행사에 참석한 기녀에게 선물을 지급하여 수고를 위로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었다. 이러한 큰 행사 이외에도 지방관이 주관하는 크고 작은 연회에도 참석하여 흥을 돋우었고 연회가 끝난 뒤에는 잠자리에 배정되어 시침을 들었다.
양반 관료는 지방관으로 부임하였을 때 기녀를 만나게 된다.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가족을 데려가도록 규정되었으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지방관의 임기가 짧아져 가족을 데려간다는 것이 번거롭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 대신 첩을 대동하고 부임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수령과 관기와 관계는 『대명률』의 ‘官吏宿娼律’로 규제되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지방관에게 관기가 제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柳希春도 전라도관찰사로 여러 군현을 순행하는 동안 그 지역의 관기를 薦枕妓로 제공받았고, 대정현감으로 부임한 金仁澤도 부임하자마자 房妓를 제공받았다. 특히 김인택은 일정기간을 이들 방기와 생활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방기는 가족을 거느리지 않고 부임한 지방관의 ‘현지첩’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방기와 지방관과의 관계는 상당 기간 지속되었으며, 이들 방기가 지방관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관아의 행정업무에 영향력을 행사
This study has seen the mean duty and operating status Gwangi, Gisaeng of local offices, seen from diary data. Gisaeng was the women who was dancing, singing, and offering sex in Joseon era. As a public existence belonging to national duty, they were the lowest class and the best entertainer at the same time.
How to classify Gisaeng is various but it is divided into Gyeonggi belonging to Jangakwon and Gwangi belonging to local offices, according to position. There were 100∼300 Gyeonggis and 20∼26 Gwangis. Gisaeng system was settled best under the reign of King Yeonsangun, but only Gwangi of local office was remained after Gyeonggi system was demolished after Injobanjeong (1623).
Gisaeng was selected from Gwangi based on charm and artistic talent. They were registered in the comprehensive list of government official in local offices. Their duties were prostitute, from 16 to 50 years old.
2) Gyeonggi served their duties in order of fixed sequence, like slaves of local offices. In other words, a team of 3 or 4 people took a turn for a certain time. It is presumed that private operation was available off duty. Gisaeng was selected before 16 years old, got education, and was located in the field. Master of Gisaeng was Haengsugi, representing them.
Gisaeng has Gimyeong, a stage name, as well as Hyangmyeong, the original name. Hyangmyeong is literally coarse name of Gwanbi, while Gimyeong sees splendid and sexual appeal.
Gisaeng could marry and give birth to their kids, which was very unstable since they needed to keep serving duty. They were disregarded although they dealt with noblemen. The first sex after being Gisaeng was called 'Sanggye,' which was considerable in their community. Gwangi and Gwanbi, the official slaves, shared duty and role. However, there was an order between them, and Gisaeng was forced to degraded to Gwanbi and was sent into exile if she had committed any crime.
3) Representative duty of Gwangi was dancing and singing to add the amusement at feasts, as a female musician. A large-scale feast was going on when an authentic recorder came to Jeonju as Myeongjong Authentic Record was completed. It was a habitual practice to encourage Gisaeng by presents. Besides such events, they took part in big and small feasts to add the entertainment, and served beds after events.
4) Noble officials generally met Gisaeng when they were appointed to a local office. Howeve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ocal governor and Gwangi was regulated by ‘Gwanrisukchangryul’ of Daemyeongryul . However, actually it was general to offer Gwangi to local governor. Yu Hichun was also offered by Gwangi serving bedtime affairs while he toured several regions as Jeollado provincial governor, while Kim Intaek was also treated with room Gisaeng named Banggi, as soon as he was took office for Daegeong-hyeon governor. Banggi was a ‘local concubine’ of governor, with no accompanying family members.
5) Yu Hichun was in special relationship with Gwangju Gisaeng ‘Yeon’ and Jeonju Gisaeng ‘Okgyeonga,’ while he was serving as Jeollado governor. Okgyeonnga was his favorite lover of 31-year old woman, who was beautiful and good at singing. She served Yu Hichun's bed affairs, shared drinks, and enjoyed to the full whenever he arrived Jeonju. However, their relation was just ‘Flower Seeing’ by all means, disconnected as change of governor. It was not rare to take them concubine after finishing the tenure of office. It was somewhat illegal, but possible when the Gwangi was registered as an assistant of Gyeonggi.
As usual, husband's whoring was the main factor to cause troubles between married couple in the 16th century also. Yu Hichun finally caught disease by casual sexes with Gwangi, regardless of his wife's request to keep away feminine charms. However, that situation couldn't be resolved even by jealousy or envy. It was tough to go against the times with individual willing. However, it is very different from the image of wom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7-2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Http://Www.Daedonghanmunhak.Co.Kr -> http://www.daedonghanmun.or.kr/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1 | 0.71 | 0.6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1 | 0.61 | 1.492 | 0.1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