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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지방 고적보존회의 활동에 대한 일고찰-개성보승회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ctivities of Local Conservation Societies of Historical Remain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With a focus on Gaeseong Boseunghoi(개성보승회)-
저자
이순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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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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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85-338(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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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공처
이 글은 일제강점기 각 지방 고적보존회의 현황 및 활동을 정리하고, 그 가운데 개성지역을 중심으로 일제의 ‘고적조사’를 빌미로 한 약탈 사례 및 개성보승회의 활동과 개성부립박물관 설립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일제강점기 지방 고적보존회 활동의 한 면모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논리를 합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민사관을 마련하였고, 그 일환으로 유적과 유물을 활용하고자 고적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인적ㆍ재정적인 제한으로 전국적인 사업으로 확대하는 데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총독부는 고적조사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면서 이미 1910년대부터 각 지방에서 설립되었던 지방 고적보존회를 파악하였다. 당시 지방 고적보존회는 중앙의 古蹟調査事業을 보조ㆍ지원하는 현지 시행부서의 성격을 지니며, 지역의 고적을 ‘보존’한다는 명목하에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지방 고적보존회는 전국적으로 설립되어 현재까지 총 50여 개로 파악되는데, 이들 고적보존회의 성격은 지역의 역사적 고적 ‘보존’ㆍ수리, 특정 유적지 보존 관리를 위해 설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그 외에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지를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포함되었다. 대개는 1910년대부터 시작하여 1930년대까지 꾸준히 설립되었으며, 단순하게 지역의 고적 문화를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의 유적을 관광상품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들을 강구하였다. 특별히 일제가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고적조사를 실시하였던 지역의 고적보존회는 지방박물관 설립의 모태가 되었는데, 경주ㆍ부여ㆍ평양ㆍ개성ㆍ공주가 그 대상지역이다.
이 가운데 개성지역은 고려의 古都로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지역으로 일찍이 일본인 도항자들에 의해 상업 및 고려자기의 약탈 등으로 주목을 받던 지역이었다. 일본인들에 의한 고분 약탈이 심해지자 그 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보존코자 1912년에 개성보승회를 관민 합동으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초기에서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였으며, 1930년 개성군의 부제 실시로 인하여 그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기하였고, 그 일환으로 박물관 설립까지 진행하였다.
개성부립박물관은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초기부터 조선인 관장을 두고, 박물관의 건물 또한 순조선풍의 건물로 건립함으로써 조선적인 면모를 드러내고자 노력하였으며, 진열면에서 그 특징을 나타내었다. 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개성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개성박물관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거기에 박물관 관장의 전문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재정적인 한계로 인해 조선총독부와 연계성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으며, 유물 수집의 적극적인 활동 면에서도 미약한 점을 드러내었다.
요컨대 일제강점기 지방 고적보존회를 모체로 발전한 지역 박물관들은 식민사관의 전시공간으로서, 지역의 문화 향상과 교통ㆍ숙박 시설의 마련 등을 통한 관광명소화 작업을 함께 진행시켜나감으로써, 일제 식민통치의 ‘선전’에 역사 유적 및 유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반면, 개성지역의 경우는 일본인들에 의한 고려고분의 도굴로 인한 매장 유물의 무작위 반출 및 약탈이 빈번한 가운데 개성보승회 활동과 개성부립박물관의 설립을 통해 고분 안에 매장되었던 유 ...
This study set out to sort out the current conditions and activities of each local conservation society of historical remains, investigate the exploitations around Gaeseong at the excuse of “examination of historical remains” by Japan, and review the activities of Gaeseong Boseunghoi and the founding of Gaeseong Burip Museum(개성부립박물관), trying to understand what kind of activities the local conservation societies of historical remains engaged in during the Japanese rule.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created a colonial view on history to make the logic of colonial rule legitimate and started to investigate Chosun’s historical remains to utilize its relics and artifacts. However, the personnel and financial restrictions made it difficult to expand the campaign nationwide. Beginning the investigation of historical remains in full scale in the 1910s,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launched an examination of local conservation societies of historical remains, which were founded to supplement and support the central government’s project of investigating historical remains as local execution agencies and to “conserve” local historical remains.
During the Japanese rule, conservation societies of historical remains were set up all over the nation totaling 50 in number. Most of them aimed to ‘conserve’ and repair historical remains of the local areas and monitor certain relics. The remaining few were established to conserve the relics related to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ir foundation continued from the 1910s to the 1930s with the goals of conserving the historical remains and culture of each region and further making local relics tourist destinations. The conservation societies of historical remains in the areas, which the Japanese rulers had special interest in and made active investigations into, became the matrix for local museums. Those areas include Gyeongju(경주), Buyeo(부여), Pyeongyang(평양), Gaeseong(개성), and Gongju(공주).
As an old city of Goryeo, Gaeseong was rich in history and cultural heritage and received Japanese visitors’ concentrated attention to exploit its commercial venues and Goryeo china. In the midst of the severe rampage of ancient tombs in the city by the Japanese, the local government and the general public collaborated and set up Gaeseong Boseunghoi in 1912 to conserve the area’s relics and artifacts. In the early days, the association could not do active activities due to financial difficulties. In 1930 when Gaeseong-gun became Gaeseong-bu, however, its activities were put on the track till they founded a museum.
Gaeseong Burip Museum, unlike other museums, had a Chosun curator from the beginning and a Chosun-style building to reflect Chosun aspects in every detail. Such characteristics were especially well demonstrated in its display. It’s all due to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s different position toward Gaeseong with its particular local features and the museum. In addition, the curator’s professionalism played a role, as well. However, it’s never free from the ties with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because of financial situations and was not active in collecting artifacts.
Local museums that developed from local conservation societies of historical remains during the Japanese rule served as the display space of the historical perspective that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tried to disseminate. They were developed along with tourism projects through enhanced local culture and improved transportation and accommodation. Japan tried to make active use of Chosun’s historical relics and artifacts for its colonial “propaganda.” In Gaeseong, the Japanese were ferocious with their relentless smuggling and exploitation of ancient Goryeo tombs. Thus the citizens made efforts to display the remains from the tombs at the modern museum through the activities of Gaeseong Boseunghoi and Gaeseong Burip Museum. In the process, of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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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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