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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廟殿宮陵園墓造泡寺調』를 통해 본 조선후기 능침사의 실태 = Studies on the actual situation of Nungchimsa (陵寢寺, Temple guarding the Royal Tombs) in late Joseon dynasty -special references to Joposajo(造泡寺調)-
저자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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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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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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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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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29(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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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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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jeongungrungwonmyojoposajo』(廟殿宮陵園墓造泡寺調) is a combined document about Joposa(造泡寺), which is the temple supplying the goods for the sacrificial rites of Royal Tombs, which is asked by Takahasi Doru, the author of Buddhism in Joseon Dynasty. Joposajo(造泡寺調) included records of 38 Royal Tombs(陵墓) and 51 Enshrined Memorial Tablets(眞殿). It is the unique documents researching the Royal Tombs and enshrined memorial tablets. It reveals important fact, which was not found before.
First in late Joseon dynasty was differentiated Nungchimsa(陵寢寺) or Temple guarding the Royal Tombs which enshrines royal memorial tablets and Joposa(造泡寺), which only supplies the goods for the sacrificial rites of Royal Tombs.
Second All of the Nungchimsa in Joposajo are founded in early Joseon Dynasty. In late Joseon Dynasty in which Nungchimsa was not found, Joposa supplies the goods instead.
Third in late Joseon Dynasty the Place for King(御室) was enshrined in the temple guarding the royal families' tombs, not king's tombs. But the Place for King was not founded in the most of Joposa(造泡寺).
Fourth contrast to Nungchimsa(陵寢寺) in early Joseon Dynasty, Joposa(造泡寺) in late Joseon Dynasty was not supported by Royal Families. Joposa(造泡寺) in late Joseon Dynasty was not exempted from national tax, not supported with farmland by nation. Reversely Joposa(造泡寺) was often taken to do forced labor.
Fifth time to finish the forced labor in Joposa(造泡寺) coincides to the time, which did away with the national ancestral rites, and which was performed in 1908, in Koran Empire.
Consequently term Joposa(造泡寺) emphasized the meaning the temple performing the labor imposed by Joseon Dynasty. It means that duties of the temples concerning the Royal Families were changed and that it engaged with change of social characteristics of Buddhism in late Joseon Dynasty.
『廟殿宮陵園墓造泡寺調』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일제시대 公文綴이다. 1930년(昭和 5년) 10월 李王職 禮式科에서 陵寢의 관리자들에게 내려보낸 完文과 능침 관리자들이 ‘능침에 제수를 공급하는 사찰’(造泡寺)을 조사해서 올린 문서들을 엮은 것이다. 이 조사는 당시 京城帝國大學 豫科 교수이자 『李朝佛敎』의 저자인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부탁으로 이루어졌다.
『조포사조』에는 이왕직에서 관리하는 廟, 殿, 宮, 陵, 園, 壇, 墓 등의 이름과 조포사, 소재지, 거리, 索引 등 목록과 함께 이왕직의 공문, 각 묘전과 능묘의 관리자들의 조사내용이 차례대로 엮어져 있다. 전주 이씨 시조인 司空 李翰의 위패를 모신 肇慶廟 慶基殿의 조포사인 鳳棲寺부터 삼척 濬慶永慶墓의 조포사인 天恩寺까지 총 38개 陵墓 및 진전과 관련된 사찰 51개가 기재됐다.
『조포사조』는 조선시대 왕실의 능묘와 진전에 부속된 사찰을 정리한 유일무이한 사료라는 점에서 불교사회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포사조』에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몇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담겨 있다.
첫째 조선후기에 이르면 능침사와 조포사를 모두 왕실원당이라고 칭하지만 능침사와 조포사의 역할을 구분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즉 능침사는 왕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조포사는 승역만 제공하는 사찰을 의미했다.
둘째 『조포사조』에 수록된 왕릉의 능침사는 모두 조선전기에 설치된 것이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면 능침사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조포사가 제수와 물품,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대신했다.
셋째 왕릉이 아닌 園이나 墓를 관리하는 사찰에는 조선후기에도 여전히 어실이 설치됐다는 점이다. 특히 왕을 배출한 후궁의 묘나 세자의 묘와 관련된 사찰에는 어실이 설치된 경우가 종종 발견되지만 대부분의 조포사에는 어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넷째 조선전기 능침사와는 달리 조선후기의 조포사에는 왕실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왕릉과 관련된 사찰에는 국가에서 사위전이 지급됐을 뿐만아니라 면역, 면세의 특권이 주어진 반면 조선후기 조포사에는 사위전이나 면세의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 승역과 조포사의 역을 동시에 담당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왕실과 특별한 인연을 지닌 사찰이나 왕의 사친을 배향한 원당에는 전기와 마찬가지로 토지나 곡식 등이 하사됐으며, 왕실원당으로서의 특권이 부여됐다.
다섯째 조포의 역이 중단된 시점은 隆熙年間 享祀釐正이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능묘담당 관리들은 조포의 역이 중단된 시점을 1908년에서 1910년으로 답변했는데, 이는 1908년 대한제국의 국가적 제사가 폐지된 시기, 즉 향사이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이로볼 때 사찰들의 잡역 중단이 향사이정의 실시와 연관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같은 내용을 종합해볼 때 조선후기에 나타난 조포사라는 용어는 전대의 능침사나 진전사원과 달리 왕실의 爲祝을 담당하는 역할이 아닌 ‘승역을 담당하는 사찰’의 의미로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전시기에 걸쳐 조포사와 능침사 모두 원당이라는 용어로 통칭되었는데, 이는 조포사의 역할이 광의의 의미에서 왕실의 안녕과 국가제사의 보조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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