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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라시압 고구리[高句麗] 사절에 대한 새 논란 검토 - 고구리[高句麗] 사신 사행(使行) 부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Ⅱ) = Consideration on the New Dispute on the Koguri (高句麗) envoy at the Afrasiab wall painting – Critical View on the Denial Theory of the Dispatch of a Koguri envoy(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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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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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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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38(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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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ent paper is the second counterargument against the argument that ‘a Koguri (高句麗, Koguryo is an erroneous pronunciation of Koguri) envoy has never been to Samarkand.’ 1. Three major points in the Denial argument that Kori (高麗, new name of Koguri after AD 413) has never dispatched an envoy to Samarkand (康國) are as following. ① The envoy dispatch was impossible because the Central Asian and the Mongolian steppe were under the control of the Tang China. ② Kori has not sent an envoy – critical view on the alliance with Xueyantuo (薛延陀). ③ It was not made because Kori could not have received an assistance of the Sogdians.
2. By examining the historical records, the Kori and the Avars (柔然) were interacted closely, some Avars after they were destroyed by the Turk moved to the Kori which tells us that in Kori was the group residence of the Avars. These historical facts certainly support the argument that a Kori envoy could have reached to Samarkand.
3. Author accepts the fact that in the Western wall scene may be the portrait of the Qaghan of Western Turk, and thinks that he should be Ishbara Khagan (651~657). Because at that time Kori had long fought for Tang, which is why Kori could not send an envoy to Irbis Shegui Qaghan (641~651), who was supportive of Tang. But Kori had to connect with Ishbara Khagan (651~657), who fought against Tang as well as Kori.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possible that Kori could have contacted the Western Turk depending on the needs. Thus, the envoy sent to the Western Turk was dispatched to alliance and gather information in Samarkand under the control of the Western Turk.
In conclusion Kori sent an envoy to Samarkand ruled by Western Turk in the course of 651~656, most likely in AD 655.
이 논문은 ‘고리[高麗] 사신이 사마르칸드에 간 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두 번째 반론이다. 고리[高麗]가 사마르칸드에 사절을 파견할 수 없다는 주장은 크게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①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이 당의 지배 아래 있어 사행(使行)이 불가능하였다.
② 고리[高麗]에서 사절을 파견하지 않았다. - 설연타(薛延陀)와의 연합에대한 비판③ 소그드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갈 수 없었다.
1. 위의 주장에 대한 반론과 서돌궐과의 연합 시도론 제기지배선은 바르후만이 강거도독으로 임명되기 이전, 곧 당의 영향력이 사마르칸드에 미치지 못했던 652년에 고리[高麗]가 당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당나라에 사절을 파견했는데, 바로 그해 정월에 사마르칸드에도 사신을 보냈다고보았다. 한편 이재성은 660년 8월부터 철륵(鐵勒) 여러 부에서 당나라에 대한반란이 일어났고, 반란은 663년 정월까지 계속되어 2년 5개월간 당의 세력권을 벗어난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이 기간에 연개소문이 철륵과 연대를 꾀하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2. 고리[高麗]와 설연타(薛延陀)의 연합 시도에 대한 재평가사행부정론자들은 설연타와의 연합은 실제 성사되지도 않고 이득도 없었기때문에 연개소문이 다시 연합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대 견해를 보였다.
이 문제를 깊이 있게 검토하여 645년 고리[高麗]와 설연타의 연합은 크게 성공하였다는 것을 밝혔고,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 설연타의 북서전선 침입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3. 650년대 고리[高麗]의 사마르칸드 사행(使行) 가능성 검토일반적으로 고리[高麗]와 돌궐의 관계는 서로 적대관계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 많았다. 돌궐이 고리[高麗]를 침략하고 당이 고리[高麗]를 칠 때 선봉에 선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궐과 고리[高麗] 관계를 동태적으로 분석해보면 시대나 정황에 따라 늘 가변적이고, 필요에 따라 서로 연합을 시도하였다는것을 알 수 있다.
4. 고리[高麗]는 스스로 초원길을 왕래할 경험과 인적 자원 보유끝으로 소그드인의 안내가 없으면 고리[高麗] 사절이 초원길을 왕래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사료 검토를 통해 고리[高麗]와 유연은 서로 이와잇몸처럼 가까이 왕래했고, 함께 연합하여 지두우를 경략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돌궐에게 망한 유연의 일부가 집단으로 고리[高麗]로 이주했다는 기록을 통해, 고리[高麗]에 유연의 집단거주지가 있었다는 것도 밝혔다.
유연은 5~7세기 동쪽 고리[高麗]에서 서쪽 알타이를 넘어 중가리아(準噶 爾, Dzungaria, Zhungaria)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었기 때문에 초원길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고리[高麗]는 자체의 힘으로 초원길을 다닐 수 있는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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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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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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