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헤론의 생애와 내한 과정에 대한 고찰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51-181(31쪽)
KCI 피인용횟수
2
DOI식별코드
제공처
이 논문은 그 동안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일차 사료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여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임명되었던 헤론의 집안 배경 및 내한 과정을 밝힌 것이다.
헤론은 부모가 독실한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부친은 영국 회중교회 목사 출신으로, 미국 장로교회 목사였다. 헤론은 모든 일에 꼼꼼하고 모범생 타입이었지만, 집념이 강하고 너무 작은 일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경향이나, 불편한 일을 쉽게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 참고 지내는 경향도 나타내었다.
헤론은 메리빌대학을 중퇴하고 의과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다가 테네시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하였다. 1883년 수석으로 졸업한 헤론이 개업을 했던 존스보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헤론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첫째, 헤론이 의료 선교사로 자원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리아 부인과의 만남이었다.
둘째, 그곳에서 동업을 했던 깁슨의 딸 해리엇과의 만남이다.
훌륭한 의사로서 선교 사역을 이해하는 배우자를 만난 헤론의 선교사 임명은 순조롭지가 않았다. 우선 1883년 5월 2일자 헤론의 선교사 자원은 싱겁게 철회되었고, 엘린우드가 헤론을 불신하게 된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후 한국 선교 개시와 관련된 이수정의 편지, 맥윌리엄스에 의한 5천 달러의 기부가 이루어지면서 1884년 4월 28일 헤론이 최초의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중국에 파송되었던 알렌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고, 헤론은 9월 부터 뉴욕 의학대학원에서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1885년 2월 2일 한국행이 결정되자, 헤론은 4월 23일 해리엇과 결혼하였고, 5월 9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일본에 잠시 체류한 후, 6월 20일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선교사로 임명된 지 1년이 넘어 선교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This article deals with the familial backgrounds and process of Dr. John W. Heron"s coming to Korea by careful analysis of primary data scarcely used in the previous studies.
Dr. Heron was the eldest son in a devoted Christian family. His father was a pastor of an English Congregational Church, and a Presbyterian Church in the U. S. A. of the time. Dr. Heron was a meticulous person with strong devotion and sometimes would show a tendency to focus on too much details and had hard time letting go of past events.
Dr. Heron left the Maryville College halfway, and worked as a teacher for 5 years to save funds for entering Medical College. He entered the Medical Department of Tennessee University in 1881, and graduated with honours in 1883. He opened a clinic at Jonesboro, Tennessee, where gave special meanings to his life.
Dr. Heron met Mrs. Rhea in Jonesboro, who influenced him the most becoming a medical missionary, and also Miss Harriett E. Gibson, the daughter of his partner Dr. Gibson. Harriett had a good understanding on the importance of missionary duty.
The appointment of Dr. Heron as a missionary by Presbyterian Church, U. S. A. went not smoothly. Dr. Heron expressed his intention for a foreign missionary in the letter of May 2, 1883. But it was easily withdrawn by himself, and gave Dr. Frank F. Ellinwood, the Secretary, a reason to distrust Dr. Heron.
Mr. Rijutei, the first Korean who baptized in Japan, sent an appeal to the American Church asking the starting of missionary work by American in Dec. 1883. This letter moved the mind of Mr. David W. McWilliams, who executed a will of Late Frederick Marquand, to donate $5,000 for the opening of Korea as a new mission field. This event facilitated the appointment of Dr. Heron as a first medical missionary to Korea on April 28, 1884.
However, Dr. Horace N. Allen, who was dispatched to China in October 1883, was transferred to Korea in September 1884.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provided Dr. Heron took the course at New York Postgraduate Medical School from September 1884. Dr. Heron finished the course with excellent scores, and took a position of Associate Physician of Almshouse Hospital of Blackwell Island, New York.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decided to send Dr. Heron to Korea on February 2, 1885. After finishing the work at Almshouse Hospital, Dr. Heron married to Miss Harriet E. Gibson on April 23, and arrived at his mission field, Chemulpho, on the 20th of Jun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4-2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Society For Korean Church History -> The Society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3 | 0.43 | 0.5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 | 0.64 | 0.945 | 0.13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