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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이용악 시의 자기 파탄과 지양된 어둠 = Self-destruction and Rejected Darkness in the Poems by Lee Yong-ak at the End of the Japanese Rule - Focusing on Initial Publications of the Poem Collection Vio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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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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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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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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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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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08(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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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귀국한 후의 이용악 시들은 훗날 시집 『오랑캐꽃』(1947)에 수록되지만, 그간의 연구들은 『오랑캐꽃』 · 『절라도 가시내』 · 『강ㅅ가』 등만을 논함으로써 일제 말기 그의 시세계에 대한 전체적 조감에 이르지 못해 왔다. 특히 이 시기의 시들을 ‘자기 파탄’의 퇴행으로만 여겨온 경향이 강했는데, 본고는 이 같은 일면적 접근보다는 자기 파탄과 친일을 극복한 다면적, 과정적, 역동적 측면을 밝힘으로써 신체제기 이용악 시의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였다.
귀국 후 이용악은 총후국민 창출에 앞장선 『인문평론』에 몸담게 되면서 그로 인한 자기 모순과 환멸의 언어들을 1940년 초부터 내놓는다. 그러나 슬픔과 우울, 외로움과 무기력, 부끄러움과 죄의식, 비관과 절망, 자조와 자학 등의 ‘자기 파탄적’ 시들이 오래간 것은 아니다. 1940년 6월부터 2인칭의 ‘당신’ 찾기로 나아간 그의 시는 함북 경성의 고향을 통해 공동체적 타자(“옛적 사람들”)까지를 찾는다. 고향은 폭력과 죽음이 난무한 북방의 전장을 대체할 생명력의 공간으로 이상화된다.
이처럼 고향의 재발견을 통해 서울에서의 자기 모순과 환멸감을 견뎌나가던 그의 시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 시점은 1941년 중반부터로 볼 수 있다. 『인문평론』이 폐간되자 일종의 해방감 속에서 고향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을 더욱 열망한 그는 실제로 1941년 8월 전에 낙향한 것으로 보인다. 귀향 후에도 한동안 그에게 고향은 “아무러케 불러도 즐거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충일감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는 전근대적인 고향에 대한 실망과 함께 싹튼 서울 지향주의 때문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곧이어 발발한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남방을 향한 그의 동경이 서울을 넘어 일본 군국주의의 진출지인 남태평양으로까지 확장된 점에 있다. 따라서 1942년 3~4월의 친일시들은 「지도를 펴노코」에서 보듯 남방 일대의 전시 스펙타클을 향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몇몇 친일시를 쓰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용악은 “南方엘 가지 않으련다”는 다짐으로 친일 욕망을 이내 회수하면서 절필을 통한 침묵의 저항으로 나아갔다. 마지막 발표작 「항구에서」는 “갈바리의 산”과 함께하는 묵시록적 순교 의지를 통해 “즘생처럼 우는 뱃고동” 소리의 독립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였다.
This article is written from a bird’s eye view of the poetry world of Lee Yong-ak at the end of the Japanese rule. As previous studies on the poems by Lee Yong-ak have been restricted to some of his famous poems, full accounts and the true picture of his poems were not identified. Poems during this period were underestimated as degeneration to ‘self-destruction.’ From this critical mindset, this article aimed to illuminate the multi-faceted, progressive, and dynamic aspects of the poems by Lee Yong-ak, who overcame self-destruction and the pro-Japanese trend. It is expected that a new understanding of the poetry world of Lee Yong-ak at the end of the Japanese rule has been established.
After returning from Japan, Lee Yong-ak worked at Criticism on Humanities (Inmoonpyungron) which was a pro-Japanese magazine, because of relationship with Choi Jaeseo. He published poems of self-disillusionment, such as sadness, depression, loneliness, helplessness, shame, guilt, pessimism, despair, self-deprecating, and self-torture. However, such self-destroying poems did not last long. From June 1940, his poems recovered the second person ‘You’ and then communal others through home. Home is idealized as the space of life that can replace the battlefield in the north, which is full of violence and death.
While his poems endured self-destruction in Seoul through the rediscovery of home, he met a new transition in the middle of 1941. Criticism on Humanities (Inmoonpyungron) was discontinued. With a sense of freedom, he searched for “A Single Way” to home more and more. Actually, he went home in July or August 1941. For some time after going home, home was “An enjoyable name no matter what it is called.” However, the feeling of satisfaction from home did not last long because he was disappointed with the outdated appearance of home. Again, he missed Seoul in the south.
The problem was that the Pacific War broke out at that moment. His longing for the South extended to the South Pacific beyond Seoul, where Japanese militarism had advanced. In March and April 1942, he published some pro-Japanese poems. Fortunately, however, he could calm his desire for the pro-Japanese with the resolution “I will not go to south” and could advance to the resistance of silence through giving up writing. Through his last work “At a Port,” he showed his will of apocalyptic martyrdom with “Mountain in Golgotha.” Additionally, through “Boat Horns Crying like Animals,” he expressed the desire for independence of the fatherland.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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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3-23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근대문학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Modern Korean Literature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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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7 | 0.67 | 0.65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9 | 0.8 | 1.362 | 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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