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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서간도 지역 친일단체의 활동과 동향 -安東朝鮮人會와 滿洲保民會를 중심으로- = The Activities and Trends of Korean Pro-Japanese Groups in Segando during the 1920s -mainly in Andong Chosun People’s Association and Manchurian Chosun People Protecti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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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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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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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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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18(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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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escribes the activities and trends of the Andong Chosun People’s Association(安東朝鮮人會, hereinafter the Association) and the Manchurian Chosun People Protection Society(滿洲保民會, hereinafter the Protection Society), which were most well-known Korean pro-Japanese organizations in Seogando(西間島) from the 1910s to the 1920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ogando was the main residence of migrant Koreans, along with Gando(間島). Most of Koreans in Seogando were poor farmers. However, unlike the Aprok lower region, this area was not affected by Japan and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group had a strong influence.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re were differences in the activities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pro-Japanese organizations in this area, which belonged to the lower of the Aprok.
Until the March in 1919, the representative Korean pro-Japanese group in Seogando was Andong Chosun People’s Union(安東朝鮮人組合, hereinafter the Union). Since its establishment in 1913, the Union has its headquarters in Andong and has established branches in the lower Aprok as well as the upper middle region. From March Independence Movement, however, there were intensive attacks by the independence movement group and participation of some cadres in the opposition. As a result, the Union was not able to work.
In response, Japan tried to dissolve the Union and replace it with the Protection Society. However, with concern about the Koreans' opposition and the need to check the Protection Society, it was concluded to establish branches of the Protection Society in the Andong Consulate's jurisdiction and change the name of the Union to the Association. That is to say, two pro-Japanese organizations existed in Seogando.
Since then, the Protection Society has expanded its organization to 50,000 members. In 1924, however, Japan decided to dissolve it, Japan appointed the head of the Association in Seogando. However, most of the Association cadres, including the branch director, were formerly related to the Union or the Protection Society. In order to encourage the Association, Japan has given more subsidies and salaries to the Association cadres than those in the lower regions.
Unlike the relatively diverse activities in the lower regions, such as encourage seeking works or side jobs, its activities was not visible. This difference was due to the fact that active activities were not possible in the situation where the threat of the independence group remained in Seogando, unlike the Aprok downstream region where stable activities were possible under Japanese influence until the 1930s.
On the other hand, the activities of pro-Japanese Koreans were more consistent. Since 1924, they were appointed as heads of the Association. After the March in 1919, they continued their pro-Japanese activities even in the circumstances of their own death as well as their families. However, it is wondering the tendency of the Association did lead to the activities.
This is a limitation and feature of the activities of the Korean Pro-Japanese group in Seogando, which was able to survive only under the support and influence of Japan.
본 연구는 191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서간도에서 조선인 친일단체였던 안동조선인회와 만주보민회의 활동과 동향을 설명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서간도는 간도와 함께 이주 조선인들의 주요 거주지로 이주 조선인 대부분은 빈농이었다. 하지만 서간도는 하류지역과 달리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독립운동 세력의 영향력이 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압록강 하류지역과 중상류지역에 속하는 서간도에서 조선인 친일단체의 활동과 성격에는 차이가 있었다.
3·1운동 이전까지 서간도의 대표적 친일단체는 안동조선인조합이었다. 안동조선인조합은 1913년 설립된 이후 안동에 본부를 두고 압록강 하류는 물론 압록강 중상류까지 지부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독립단의 집중적인 공격과 일부 간부들의 독립단에 참여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졌다. 그 결과 사실상 안동조선인조합은 그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일본은 안동조선인조합을 해산하고 이를 만주보민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한인들의 반발을 우려하는 안동영사의 반대와 만주보민회 견제의 필요에 따라 안동영사관 관할구역에 보민회 지회를 설립하고 1921년 안동조선인조합의 명칭을 안동조선인회로 개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말해 3·1운동 이후 서간도에는 안동조선인회와 만주보민회라는 성격이 같은 두 개의 친일단체가 양립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만주보민회는 조직이 계속 확대되어 회원수가 5만에 이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1924년 일본은 만주보민회 해산을 결정하고 일본은 다시 1924년 장백·집안·임강·관전현의 안동조선인회 지부장을 임명하였다. 하지만 지부장을 포함한 안동조선인조합 간부들 대부분은 이전 안동조선인조합이나 만주보민회 관련 인물들이었다. 일본은 안동조선인회의 활동을 독려하기 위하여 지부장을 비롯한 안동조선인회 간부들에게 하류지역보다 더 많은 보조금과 급료를 지급하였다.
그러나 하류지역에서 한인들의 부업 장려나 취업 알선 등 비교적 다양한 안동조선인회의 활동과 달리 서간도에서는 교육과 의료지원 이외에 안동조선인회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1930년대까지 일본의 영향력 아래 하류지역에서는 안정된 활동이 가능하였던 반면 서간도에서 독립단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안동조선인회는 활동이 미미했다.
반면 친일 조선인들의 활동은 보다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양상을 보였다. 1924년 이후 안동조선인회 지부장 등으로 임명된 이들은 안동조선인조합 시기부터 친일활동을 하였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3·1운동 이후 자신의 신변은 물론 가족까지 살해당하는 등의 상황에서도 친일활동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안동조선인회 간부들의 친일 성향이 안동조선인회 활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지원과 영향력 아래에서만 생존이 가능하였던 서간도 친일단체들의 한계이자 특징이라 할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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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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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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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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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9 | 0.59 | 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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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 0.62 | 1.442 | 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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