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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연구 = A Study of Rock-carved Seated Buddha in Bukhansan Mountain, Gugi-dong,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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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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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4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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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ck-caved Seated Buddha in Bukhansan Mountain, Gugi-dong, Seoul(Treasure) is located within Seunggasa Temple nearby Bukhansan Bibong. It is engraved on a huge, almost white bedrock. Until now, research on Seunggasa in Buddhist statues has been focused on the the ‘Stone Seated Statue of Buddhist Monk Seungga’, which was made in 1024(15th year of King Hyeonjong of Goryeo). However, it is not clear when Rock-carved Seated Buddha in Bukhansan Mountain, Gugidong was created. As a result, it has only been mentioned as one of the representative works of rock-caved Buddha statuses in the early Goryeo period, built around the 10th or 11th centuries of Goryeo. It is presumed that this Seated Buddha in Bukhansan Mountainis was created during the reign of King Hyeonjong along with the Monk Seungga statue,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created for cherishing his father Anjong. This can be proven through the excellent workmanship reflected in this award, along with the circumstances in which King Hyeonjong was deeply involved in the restoration of the ‘Seunggagul’.
The Rock-caved Seated Buddha in Bukhansan Mountain, Gugi-dong adopts the representative style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sculpture, such as Bhūmisparsa(降魔觸地印) posture, Uttarāsaṅga(偏袒右肩) garment, and presenting realistic body with a rich sense of volume. As such, it can be said that this statue well mingles the style of Unified Silla Buddhist statue style and Goryeo style. In particular, the stone chatra(寶蓋) was a popular element mainly in the Goryeo Dynasty, and this statue is the only case so far that the stone chatra was applied to the rock-caved buddha statues. At the same time, the production method of the upper body with high relief and the lower body with low relief shows a stage in the process of gradually shifting from high relief to low relief. In addition, the refined sculptures applied in this Buddha statue show the dedicated craftsmanship. It can be compared with the best stone works, such as a stupa of buddhist monk and a monument, which were made under the leadership of the royal family of Hyeonjong(顯宗).
On the back of the halo of the Stone seated statue of buddhist monk Seungga, the Goryeo royal family’ intention to create Rock-caved Seated Buddha in Bukhansan Mountain, Gugi-dong and 'The Seungga Cave(僧伽窟)' is engraved. Many temples have been built on Samgaksan Mountain in Baekje and the Unified Silla Dynasty. However, during the Goryeo Dynasty royal family began to pay attention intensively. In particular, the earliest records related to Samgaksan appear in the history of the Hyeonjong dynasty. Before ascending to the throne, King Hyeonjong hid in Shinheolsa(神穴寺) Temple, Samgaksan. After he became king, he led royal family members to Dobongsa Temple to avoid Khitans military invasion. After the war with the Khitans, King Hyeonjong made special support to Buddhism community, and in 1018 Hyeonhwasa(玄化寺) temple was established to hold memorial services for parents. Also, in 1016 Gwangyeontonghwawon(廣緣通化院) were built in Cheonan, an important transportation hub, and the name Bongsunhonggyongsa(奉先弘慶寺) was given to honor the will of his father Anjong(安宗). As can be seen from the background of the founding of Hyeonhwasa Temple and Bongsunhonggyongsa Temple, King Hyeonjong performed many projects for commemorating his parents. To deal with Hyeonjong efforts, Daejiguksa Beopgyeong(大智國師 法鏡) played a significant role. During the reign of Hyeonjong, Beopgyeong was the position of the Wangsa(王師), and during the reign of King Deokjong(德宗) he became the Guksa(國師). He was dead at Samcheonsa Temple(三川寺) in Samgaksan. This suggests that Hyeonjong's filial piety seemed to be a strong motivation for the rebuilding of the The Seungga Cave and the formation of the Great monk Seungga statue. The inscription on the back of the Great monk Seungga statue had a variou...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은 북한산 비봉의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입지하며, 백색에 가까운 거대한 암반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은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보물)이 봉안되어 있는 승가사 경내에 있다. 지금까지 불교조각사에서 승가사에 대한 연구는 1024년(고려 현종 15) 조상명이 있는 승가대사상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같은 승가사 경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상명이나 기록이 뚜렷하지 않아 고려 10세기, 혹은 11세기 무렵에 조성된 고려 전기 마애불의 대표작 중 하나로 언급되어 왔을 뿐이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현종이 아버지 안종의 추선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승가대사상과 함께 현종대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는 ‘승가굴’의 중수에 현종이 깊이 관여한 정황과 함께, 이 상에 반영된 뛰어난 작품성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편단우견의 착의법에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도상을 채용하였고, 양감이 풍부한 사실적인 신체를 구현하는 등 앞 시기 불상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상은 통일신라의 도상과 양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제작 방식과 얼굴, 도상의 변형 등을 통해 고려 불상 양식의 새로운 전형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보개는 고려시대 거석불(巨石佛)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한 요소로서, 본 상은 마애불에 보개가적용된 것으로서는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이다. 이와 함께 상반신은 고부조, 하반신은 저부조 방식으로 조성된 제작 방식은 마애조상의 제작 방식이 고부조에서 점차 저부조로 이행하는 과정의 한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마애불에 구사 된 세련되고 정제된 조각은 장인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현종대 왕실 주도 하에 제작된 승탑, 비 등 당대 최고의 석조미술품과 비견할 수 있다.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의 조성 배경은 삼각산(三角山)과 ‘승가굴(僧伽窟)’에 대한 고려 왕실의 태도와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 광배 배면에 있는 명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백제의 도읍을 정한 장소이자 통일신라 때 小祀를 지내기도 한 삼각산에는 많은 사찰들이 건립되어 왔지만, 왕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특히 『고려사(高麗史)』중 삼각산과 관련된 기록이 가장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현종대(顯宗代)이다. 현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삼각산 신혈사(神 穴寺)에서 은거하였고, 재위 직후에는 어가를 이끌고 도봉사(道峰寺)로 가 난을피하기도 하였다. 현종은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불교의 재건에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018년에는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화사(玄化寺)를 창건하였다. 또한 1016년에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천안에 사찰과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을 짓고, 아버지 안종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 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하였다. 현화사와 봉선홍경사의 창건 배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종은 재위기간 중 부모의 추선을 위한 많은 불사를 행하였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필한 것은 대지국사 법경(大智國師 法鏡)이다. 법경은 현종 재위간 중 왕사(王師)의 지위였고, 덕종대에 국사로 책봉된 이후 삼각산 삼천사(三川寺)에서 입적하였다. 이는 승가굴의 중수와 승가대사상의 조성에 현종의 효심이 강하게 작용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그 배경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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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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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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