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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대 대명의식과 여진 정벌(征伐) = Awareness Against Ming Dynasty During Taejong Epoch of the Chosun Dynasty And the Conquest of Yeojin
저자
이규철 (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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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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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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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6(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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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early days of Chosun Dynasty, animated activities of outside conquest were extraordinarily done. The conquest of Yeojin which occupied the mainstream of outside conquest, made it unavoidable to collide against the interest with Ming Dynasty which had been nominally ruling this area.
To think of this fact, it is comprehended that the submission to the stronger which Chosun Dynasty put up with founding its nation, had a considerable limit.
In conclusion, Chosun Dynasty not so much recognized submission to the stronger as value to be necessarily kept as exploited it to give some justification to their own political deeds.
Without doubt, Chosun Dynasty preferred attaining the current government when the two principles conflicted with each other. In case that following the stronger was judged to be against a nation’s interests, they did not obstinately follow it.
This means that submission to the stronger had not choice but to be attached to the absolute value of a nation’s protection.
At the same time, it is shown that the submission to the stronger in Chosun Dynasty did not mean the national interests.
The Conquest of Moryun-wee made in 1410 (10th Period of Taejong Epoch) was taken as a military action which the intention for obtaining the initiative of Chosun for the area of the Yeojin was strongly reflected.
The conquest of Yeojin during Taejong Epoch was shown differently from that of the post, which means collateral evidence that it made a surprise attack on the enemy by mobilizing the minority of elite troops rather than overwhelmed the opponents by raising a large force in Chosun at that time.
In spite of it, since the Chosun Army succeeded in carrying out the raid operations, they were able to win the great wartime accomplishments despite having mobilized the comparatively small troops.
Chosun insisted the fake logic that they had not known that the chiefs of Yeojin were not given public posts of Ming Dynasty with informing Ming of the result of conquest.
Together, they also tried to explain that The Conquest of Moryun-wee was not regarded as the decision from the national level but as the response to the change of location against the invasion of foreign enemies.
This is also, I’d say, the situation showing the limit of awareness against Ming Dynasty which Chosun Dynasty had.
조선초기에는 유독 활발한 대외정벌(對外征伐) 활동이 이루어졌다. 대외정벌의 주류를 점했던 여진(女眞) 정벌은 명목상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명과의 이해관계와 충돌이 불가피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조선이 건국과 함께 내세웠던 사대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조선은 사대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로 인식했다기보다는 정국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정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활용했다.
조선은 두 원칙이 충돌할 때 당연히 국정목표의 달성을 우선시했다. 사대명분을 따르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굳이 따르지 않았다. 이는 사대가 국가의 보전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부속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시에 아직 조선에서의 사대가 곧 국익을 의미하지 않았음도 보여준다.
1410년(태종 10) 단행되었던 모련위 정벌은 여진 지역에 대한 조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군사 행동이었다. 태종대의 여진 정벌은 이후의 정벌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당시 조선에서 대군을 동원해 상대를 압도하기보다는 소수의 정예 병력을 동원해 적을 기습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하지만 조선군의 기습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병력을 동원했음에도 큰 전과를 얻을 수 있었다.
조선은 정벌의 결과를 명에 알리면서 여진 추장들이 명(明)의 관직을 받았다는 알지 못했다는 거짓 논리를 주장했다. 아울러 모련위 정벌을 국가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에 대한 변경 장수의 대응으로 설명했다. 이 역시 조선이 가지고 있던 대명의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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