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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敬根이 걸어 간 한국근현대사 -독립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 The way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history walked by Ahn Kyung-guen -from independent movement to unification movement-
저자
한상도 (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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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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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1-8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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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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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18, when he was 23, Ahn Kyung-guen came to Vladivostok as an exile, and in the spring of 1921 moved into Shanghai and entered the Military Training School in Yunnam in the April of following year. In 1924, he returned to Shanhai but moved again into Manchuria and participated in Jungeuibu. From November in 1926 to August in 1927, when he worked as an instructor in the Hawngpu Military Academy, Ahn Kyung-guen was faced into the political change in China and resigned from his post and returned to Shanghai. He had military careers to be worthy of close.
In the April of 1932, with the Korea-China solidarity established under the Honggu Movement, his connection with Kim Gu started in earnest. He played the vital rule in the anti-Japanese special duty organization composed with Korean Special Group and Korean Independent Special Army-Training School in the branch of Luoyang of the Chinese Central Military Academy of Army.
Ahn Kyung-geun carried out the activity of anti-Japanese special duty in the Tianjin and Shanghai as well as playing the role of protection of Kim Gu. The fact that Kim Gu’s mother and son connected with him only through Ahn Kyung-Geun suggested the his role and importance. He was appointed as member of assembly in Hwanghaedo in 10th November, 1937, and also a member of a military committee in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 16th July 1937.
In May 1946, returning to his country, his existence was noticed at the time of the South-North negotiations in April 1948. He was sent to Pyeongyang as an envoy of Kim-Gu on April 7 in the background of connection with Kim Du-bong and Choi Yong-gun, who were the most influential persons in North Korea in the time of independent movement, and the night of following day he met the Kim Du-bong and Kim Il-Seong, and returned to Seoul on 10. On these basis, Kim Gu could go to North Korea.
In the 1591, 1·4 Retreat, after Kim Gu was assassinated and in the following year the Korean war was broken out, he evacuated to Daegu and lived for 23 years. Shortly after the 4ㆍ19 Revolution in 1960, he took the lead to organize the Comrade Party for Democracy and Saving Nation, and reorganized to Committee for Current Situation in Gyeongsangbukdo and was appointed as a chairman. After then, as the chairman of the Alliance for National Unification in Gyeongsangbukdo he led the unification movement in Gyeongsangbukdo and Daegu. Before one knows, he changed to important person of struggles against despotism and unification movement. He served his sentence on the charge of stimulation the activities of north korean collective group, and be released from prison in 16 December 1963.
As the cousin of Ahn Chung-guen and the his trace of life as a shadow of Kim Gu, he represented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of Korea from independent movement to unification movement.
安敬根은 23살 때인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으로 망명하여, 1921년 봄 上海로 이동하여 이듬해 4월 雲南講武學校에 입교하였다. 1924년 상해로 귀환하였으나, 다시 만주로 가서 正義府 활동에 참가하였다. 1926년 11월에서 1927년 8월까지 黃埔軍官學校에서 5기생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중국정세의 변화에 맞닥뜨려 교관 직을 사임하고 상해로 귀환하였다. 괄목할만한 군사활동 이력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32년 4월 虹口義擧를 계기로 성립된 한ㆍ중 연대를 배경으로, 그와 金九의 인연도 본격화되었다. 그는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洛陽分校 내 韓人特別班과 韓國特務隊獨立軍學生訓練所로 짜여진 김구 항일특무조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김구의 신변경호뿐만 아니라, 天津·上海 등지를 무대로 항일특무활동을 수행하였다. 김구의 모친과 아들도 그를 통해서야 김구와 만날 수 있었던 사실은 그의 역할과 비중을 알려준다. 1936년 11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황해도 의원’에 선임되었고, 1937년 7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軍事委員會 상무위원에 선임되었다.
1946년 5월경 귀국하여, 1948년 4월 이른바 ‘남북협상’에 즈음하여 그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되었다. 북한정권의 최고실력자인 김두봉 및 최용건과의 독립운동시기 인연을 배경으로, 4월 7일 김구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파견되어, 이튿날 저녁 김일성ㆍ김두봉을 만나고, 10일 서울로 돌아왔다. 이를 토대로 4월 19일 김구가 북행길에 올랐다.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암살되고 이듬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1년 ‘1ㆍ4후퇴’ 때 대구로 피난 가서 23년간 살았다. 1960년 4ㆍ19 혁명 직후 民主救國同志會 결성을 주도했고, 10월 22일 慶尙北道時局對策委員會로 개편하였는데, 그가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慶尙北道民族統一聯盟 위원장으로 경북ㆍ대구지역의 통일운동을 주도하였다. 어느새 반독재·통일운동의 중심인물로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5ㆍ16쿠테타로 체포되어, ‘북한괴뢰집단의 활동을 고무ㆍ동조하는 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복역 중, 1963년 12월 16일 석방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으로, 김구의 그림자로 살아온 삶의 궤적은 항일독립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근현대사의 속살을 잘 드러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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