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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지눌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친 고승- '보조전서' 안팎의 고승들을 중심으로 - = The High Priests Who Gave Effects to the Philosophy of Bojo Jinul - Focusing on the High Priests Described in 『Bojojeon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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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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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7(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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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iscuss the high priests who gave effects to the philosophy of Bojo Jinul(1158~1210). During his lifetime (for 53 years), he exchanged with many high priests. Although they were the indirect communion with the high priests with high learning and virtue through their books, he had a deep conversation with them.
Since becoming a Buddhist while studying under the Jonghwi of Sagulsanmun(闍崛山門) who was Jogye(曹溪) descendant(雲孫), he has met the heads of various temples including Deukjae for ‘direct communion’. After that, he exchanged with Wonmyo Yose who led Baekryeongyeolsa during training. Hyesim who became the second head of Suseonsa, his disciple, Jeongseon, Suu who discovered the site for Gilsangsa in Songgwangsan in order to move the stage of Jeonghyegyeolsa according to command, and Chungdam who was in charge of publication and distribution of a posthumous work were the priests who shared the last time with him. He directly met and exchanged with ‘Haedong Jogyesan Suseonsa an ascetic(海東曹溪山修禪社道人) Chungdam’, ‘to raise craftsman typesetting print eternal person(募工彫板印施無窮者) Suseonsa an ascetic(同社道人)’ Hyesim’, ‘an ascetic in the firm as donor(施主社內道人) Damryeong’ and ‘a wife of Jikseung who the head of native place in Naju as donor(施主羅州戶長直升妻) Jinuigeum’ who were described in the imprint of 『Hwaeomronjeolyo』. In the process, his philosophy and though were matured.
Jinul met Mamyeong, Yongsu and Hobeop Bodhisattva in various sutras and discussion books for indirect communion. He met Seungjo & (Geumreungbo) Jigong, Samjo (Seungchan) & Sajo (Dosin), Jaeun(Hyeonjang), Wonhyo & Uisang, Itonghyeon & Hyeonsu (Beopjang), Jogye (Hyeneung) & Yeongga(Hyeongak) & Hataek(Sinhoe), Bangon(Geosa) & Baehyu (Geosa), Cheongryang (Jinggwan) & Gyubong (Jongmil), Gwijong (Jisang) & Imje(Uihyeon), Myeonggak(Seoldu Junghyeon) & Gwangye(Jihan), Beopan (Munik) & Unmun(Muneon), Channyeong & Dowon, (Hongju) Suryo & Bulan (Cheongwon), Boan (□-do), Jangro (Jongsaek), Cheonbok (Seunggo), Gyeongsan (Daehye) & Malsanni (Yoyeon), Jiso & Sugyeon, Cheonggye (Hongjin & Jinsanju) & Yongje (Soju & Jinsanju) and Beopdeung & Wibu (Daegak) Wonhwaeom for philosophical conversation. In the process, Jinul was deeply affected by Hyeneung, Yeongga, Hataek, Jongmil, Yeongmyeong and Daehye. As a result, he could draw the topographic map of the three gates(三門), Jinsim-Seon(眞心禪) and Musim-Seon(無心禪) in Sung-Jeok-Deungji gate(性寂等持門), Won-Don-Sinhae gate(圓頓信解門) and Ganwha-Gyoungjeol gate(看話徑截門), which were his unique philosophical map.
Jinul who was the first runner of 16 national priests producted by Jogyesan Songgwangsa in Goryeo Age was the driving force that enabled Songgwangsa that produced 16 national priests and 2 royal priests including his disciple Jingak Hyesom to confirm its position as ancestral temple of Seung-Bo(僧寶宗刹). Cheonggyu and Bocheong of Suseonsa who contained the training trend of Jinul were the priming water to enable Songwangsa to become the temple of training. The driving force and priming water were originated from the philosophy and though formed by the highest priest Jinul through direct or indirect communion with the high priests of previous or contemporary age.
이 논문은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친 고승들에 대해 논구한 글이다. 지눌은 53년의 생평동안 적지 않은 고승들과 교감하였다. 그는 ‘간접 교감’이기는 했지만 학덕과 덕행이 높은 고승들의 저작들을 만나 그들과 깊은 대화를 하였다.
지눌은 조계(曹溪) 운손(雲孫)이었던 사굴산문의 종휘(宗暉)의 문하로 출가한 이래로 각 산문에서 득재(得才) 등의 수좌들과 만나 ‘직접 교감’을 하였다. 또 뒷날 백련결사를 주도한 원묘 요세(圓妙了世)와 수행하며 교감하였다. 그리고 지눌에 이어 수선사 2대 사주가 된 진각 혜심(眞覺慧諶)을 필두로 하여 그의 제자였던 정선(正宣), 정혜결사의 무대를 옮기기 위해 그의 명을 받고 송광산 길상사터를 발견한 수우(守愚), 유저의 간행과 유포를 담당했던 충담(冲湛) 등은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했던 선사들이다. 이처럼 지눌은 그의 『화엄론절요』 뒤의 간기에 적힌 ‘해동조계산수선사도인(海東曹溪山修禪社道人) 충담(冲湛)’, ‘모공조판인쇄무궁자(募工彫板印施無窮者) 동사도인(同社道人)’ 혜심(慧諶書)’, ‘시주사내도인(施主社內道人) 담령(湛靈)’, ‘시주나주호장직승처(施主羅州戶長直升妻) 진의금(珍衣金)’ 등과도 만나며 직접 교감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철학과 사상은 성숙하여졌다.
지눌은 여러 경전과 논서 속에서 마명과 용수 및 호법 보살 등을 만나 ‘간접 교감’을 하였다. 교장(장소류) 속에서 그는 승조와 (금릉보)지공, 삼조(승찬)와 사조(도신) 및 자은(현장), (분황)원효와 (부석)의상, 이통현과 현수(법장), 조계(혜능)와 영가(현각)와 하택(신회), 방온(거사)과 배휴(거사), 청량(징관)과 규봉(종밀), 귀종(지상)과 임제(의현), 명각(설두 중현)과 관계(지한), 법안(문익)과 운문(문언), 찬녕과 도원, (홍주)수료와 불안(청원), 보안(□도)과 장로(종색)와 천복(승고), 경산(대혜)과 말산니(요연), 지소와 수견, 청계(홍진, 진산주)와 용제(소수, 수산주), 법등과 위부(대각)원화엄 등과 만나 철학적 대화를 깊이 나눴다. 이 과정에서 지눌은 특히 혜능과 영가, 하택과 종밀, 영명과 대혜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적 지형인 성적등지문(性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그리고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으로서의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의 삼문과 진심선(眞心禪)의 지형도를 그려낼 수 있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조계산 송광사가 배출한 16국사의 첫 주자였던 지눌은 이후 제자 진각 혜심 등 16국사와 2왕사를 배출한 이 절이 승보종찰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또 그의 수행가풍을 담은 수선사 청규(淸規)와 보청(普請) 등은 송광사로 하여금 수행의 사찰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한 마중물이었다. 이처럼 고려 중기에 형성된 선사상의 큰 흐름은 명철한 시대정신과 투철한 역사인식을 가진 고승 지눌이 전시대 및 동시대 고승들과의 간접 교감과 직접 교감을 통해 형성한 철학과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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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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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BOJOSASANG, Journal of Bojo Thought -> 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2 | 0.62 | 0.65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7 | 0.53 | 1.608 | 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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