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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을미년 한 지방관의 소신과 기록–수당 이남규의 영흥 부사 시절– = The firm beliefs and records of an official of local government in Gabo and Eulmi year–Days of Su dang Lee Nam-gyu as Yeongheung gover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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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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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98(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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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order to take a lesson from the past, this paper examines the activities and beliefs of Su dang Lee Nam-gyu(1855-1907), who served as governor of Yeongheung in 1894 and 1895, when the Joseon Dynasty was coming to an end.
Based on ‘Gabo Diary’ and ‘Eulmi Diary’, both of which are the records written by Su-dang as governor of Yeongheung, and 50 related poems, this paper considers, by looking into a period of 15 months, during which Su-dang governed Yeongheung, his activities and thoughts, orientation and conviction, resignation and retreat, and response to the reality as a Confucian intellectual.
Su-dang’s achievements, based on his beliefs, in Yeongheung are divided into four categories.
First, ‘the stabilization of people’s livelihood’ and ‘the prohibition of mining’. He tried to be a symbol of hope and a fortress for his people against difficulties through abolishing mines, even before he reached Yeongheung, as well as endeavoring to improve people’s lives under the threat of various disastrous accidents.
Second, ‘the tightening of discipline among his people’ and ‘the reinforcement of national defense’. He tried to manage to maintain Yeongheung, birthplace of the dynasty and a key stronghold of the country, as a province which held prosperity and martial arts in high regard.
Third, ‘the encouraging of Confucian spirits and cultural education’. Su-dang transformed negative perception of the Gwanbuk area, the northeastern part of Korea’ into new positive symbol of hope and expectation.
He tried to overcome the difficulties of those days by supporting the spirit of Confucian scholars and boosting education and culture.
Fourth, ‘dissenting from ‘queen expulsion order’ and then voluntary resignation‘.
After the ‘Eulmi Incident’, Su-dang urged the government to take their revenge on Japan. And he also dissented from ‘queen expulsion order’. But his opinion was not accepted. Then, he resigned from governor and went back to his hometown.
In the face of many chaotic accidents in Gabo and Eulmi years, Su-dang clearly defined himself as a Confucianist and lived up to his faith derived from learning Confucianism.
His firm faith and behavior in life—sense of honor, independent attitude, confrontation with his duty instead of avoiding it—really mean a lot to us today.
본고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거울로 삼고자, 구한말 국권 침탈기 갑오년(1894), 을미년(1895)에 영흥 부사를 지냈던 修堂 李南珪(1855~1907)의 행적과 소신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당의 영흥 부사 시절의 기록인 <갑오일기>와 <을미일기>, 관련된 50여 편의 시문을 자료로 하여 영흥 부임 경위부터 사퇴까지의 15개월여를 살펴 시대상, 수당의 행적과 사상, 내면과 정서, 지향과 소신, 사퇴 경위, 유교 지식인으로서의 현실 대응을 고찰하였다.
수당의 영흥 부사로서의 행적과 소신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民生 수습과 광산 철폐령’. 수당은 각종 사건과 재난시 民生 구호 및 수습에 진력하였고 임소에 도착하기 전 광산 철폐령을 감행하는 등, 영흥 지역 백성들에게 福星이 되고 反風之政을 펼치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豐沛之鄕과 尙武之地의 전통’. 수당은 조선 왕조의 발상지이자 關防 요충지인 영흥에서 역사적 전통과 지역적 특성을 유지하고 계승하려 노력하였다.
셋째, ‘儒風 진작과 文敎 장려’. 수당은 關北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시각과 인식을 교정하여 이곳에 기대를 걸었다, 곧 관북의 儒風을 진작하고 文敎를 장려하여 학문의 힘으로 당대 현실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넷째, ‘廢后 勅命 반대와 自劾’. 수당은 乙未事變 때 복수설치를 주장했으며, 폐후 칙명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소신이 용납되지 않자 스스로를 탄핵하여 벼슬을 던지고 낙향하였다.
수당은 갑오년과 을미년의 혼란 속에서 유교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소임을 다했으며 그 배운 바를 소신껏 실천하였다. 그의 의리 정신, 자주적인 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고자 했던 삶의 자세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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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 | 0.6 | 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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