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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退堂 李廷馨의 春川에서의 문한 활동과 그 추숭 양상 - 文巖書院배향의 동인과 관련하여 - = The Literary Activity and Commemoration of Lee Jeong-hyeong (李廷馨) in Chuncheon (春川) - In relation to the motivation of Munamseowon (⽂巖書院) enshrinement -
저자
정용건 (강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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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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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examines the academic status occupied by Lee Jeong-hyeong (李廷 馨) in Chuncheon (春川) and the motivations of Munamseowon (⽂巖書院) enshrinement through an analysis of his literary activities and later memory patterns.
Lee Jeong-hyeong grew up with a strong family background and human network, and was recognized for his outstanding talents. He served in various important positions in politics. In particular, during the Imjin War, he played a role in local defense and handling national disasters. He had set up a manor in Cheonjeon-ri (泉⽥⾥), Chuncheon and visited it frequently. Furthermore, in 1597, after his mother's death and the Jeongyu War, he settled there for approximately three years. During this period, he recognized this place as a “healing space” to recover from the heartache caused by war and his mother's death, and an “educational space” where he interacted with local Confucian scholars and nurtured the next generation. It was also used as a “writing space” that produced his representative historical writings, Hwangtogisa (⿈兎記事) and Suchunjabgi (壽 春雜記).
As such, Lee Jeong-hyeong formed a deep relationship with Chuncheon for a considerable period and conducted various literary activities. Thus, he was durably remembered by local scholars after his death. Then, in 1612, as the Munamseowon commemorating Lee Hwang (李滉) was built in Chuncheon, the argument that Lee Jeong-hyeong should be enshrined there began to be discussed in the local community, before being accomplished in 1677. Thanks to the national recognition of his role and position in the local community, endeavors such as praising him and compiling literary works were carried out later, as well as work aiming to strengthen his image to connect him with Lee Hwang. After going through such a process, he could be deemed one of the scholars representing Chuncheon to this day.
Lee Jeong-hyeong's literary activity and his commemoration in Chuncheon make it possible to understand an aspect of character memory that has been taken in the local community. It is hoped that the discussion conducted in this article will not only increase the research interest in Lee Jeong-hyeong, but also be helpful in expanding cultural contents and narratives in Chuncheon.
본고는 조선 중기 문인 李廷馨의 春川 관련 문한 활동과 그 후대적 기억 양상에 대한고찰을 통해, 이 지역에서 그가 점유한 학적 위상과 ⽂巖書院 배향 동인 및 결과를 살핀 글이다.
이정형은 유력 가문 배경과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뛰어난 학적재능을 인정받아 조정의 문한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시기에는 개성 유수, 경기도 관찰사로서 지역 수비와 국난 수습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젊은시절부터 춘천 泉⽥⾥에 장원을 마련하고 그곳을 왕래하며 터전으로 삼고 있었는데, 1597년 모친상을 당하고 곧이어 정유재란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이후 약 3년여 동안 춘천 우거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이곳을 전란과 모친상으로 인한 상심을 회복하는 ‘치유와 안식의 공간’, 지역 유생들과 교유하고 후배 세대를 양성하는 ‘후생 교육의공간’으로 인식하였으며, 나아가 ⿈兎記事, 壽春雜記와 같은 그의 대표적 역사 저술들을 산생시킨 ‘저술의 공간’으로도 활용하였다.
이처럼 이정형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춘천과 인연을 맺으며 다양한 문한 활동을 전개하였기에, 사후에도 이 지역 학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이어 1612년 춘천에 이황을 기리는 문암서원이 건립되고 그에 대한 賜額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마찬가지로 춘천을 학적 터전으로 삼았던 이정형을 이곳에 배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역 사회에서본격화되었고, 1677년 실제 서원 배향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지역 사회에서의 역할과학덕에 대한 국가적 공인에 힘입어 이후 그에 대한 ⾏狀 찬술, 문집 편찬 등 현양 작업이이루어졌고, 나아가 그를 이황과 본격적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미지 강화 작업 역시 수행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끝에 그는 현재까지 춘천을 대표하는 학인 가운데 한 명으로 일컬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이정형의 춘천에서의 활동과 그 추숭 양상은, 지역 사회에서 이루어진 인물기억과 현양의 한 양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본고에서 수행한 논의를 통해 조선 중기의문인 이정형에 대한 보다 많은 연구적 관심이 주어짐은 물론, 춘천 지역 문화콘텐츠 확보및 내러티브 확산에도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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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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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4 | 0.74 | 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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