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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단계 재일조선인의 한국민주화운동-재일한국청년동맹을 중심으로- = 民団系在日朝鮮人の韓国民主化運動 ―在日韓国青年同盟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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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은 (도쿄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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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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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485-51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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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은 원래 민단산하단체로 조직의 모체는 이승만 정권이 반공정책의 일환으로 조직한 ‘대한청년단’이다. 그 때문에 결성 당시부터 한국정부의 통제 하에 있던 단체였다.
그러나 4ㆍ19혁명과 5ㆍ16군사쿠데타를 겪는 과정에서 민단내의 저항세력으로 성장했다. 특히 5ㆍ16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던 민단집행부는 한국정부에 추종했으나 민단 내에는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고, 그들은 민단을 통제하는 한국정부에 대해 주체적일 것을 요구하며 민단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한청은 그 저항세력이 결성한 ‘민단정상화 유지간담회’의 ‘실질적인 사무국’으로 활동하며 민단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동시에 법적지위와 외국인학교법안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단집행부를 비롯해 한국정부와도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1972년에 민단은 한청을 산하단체에서 취소하고 민단으로부터 배제했다.
그 후 같은 해에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한청은 다른 민단민주화운동세력과 남북공동 성명을 지지하는 등 조국통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민단민주화운동세력은 유신체제 후에 조국통일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고, 당시 일본에 체재하고 있던 김대중의 강연에 영향을 받아 한국민주화운동으로 방향을 돌린다. 한청은 민단계 재일조선인과 김대중이 ‘연대’해 결성한 한국민주화운동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 국민회의 일본본부’(한민통)의 회원단체로 활동했다.
이후 한청은 독자적으로 운동을 전개하면서 한민통의 ‘행동대’로 한민통의 운동을 뒷받침했다. 한청은 4ㆍ19혁명 정신을 바탕으로 활동했는데 주로 노동자와 재일조선인정치범 지원 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또한 80년대에 들어서 약화된 한민통을 지원하며 한민통 운동의 실천적인 부분을 많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청은 70년대에 들어 시작된 개인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권리획득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ㆍ지원했다.
한청은 전前 재일조선인정치범인 서승이 제기한 ‘적극적 민족주의’를 발전시켜 조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려는 의지를 담은 ‘건국ㆍ귀국사상’에 기반을 두고 문화활동을 통해 한국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한청은 조국의 문화와 역사, 한국의 정치ㆍ사회에 대한 학습, 그리고 ‘우리말’(한국어) 학습 등을 실시했다.
이러한 한청의 활동을 한국정부는 경계하고 견제했으며, 일본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한 청을 탄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청은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의 정세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그 일환으로 ‘민주화’ 달성 후에는 조국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在日韓国青年同盟」(韓青)は元来民団傘下団体であって、その母体は李承晩政権が「反共」の砦として組織した「大韓青年団」である。そのため、結成当初から韓国政府の統制がかかった団体である。しかし、4·19革命と5·16軍事クーデターを経る過程で民団内の抵抗勢力と成長した。特に、5·16軍事クーデターを支持していた民団執行部は韓国政府に追従しており、これに対し抵抗するグループが現れた。彼らは民団を統制する韓国政府に対し主体的であることを要求する民団民主化運動を展開した。韓青は、その抵抗勢力が結成した「民団正常化有志懇談会」の「実質的な事務局」として活動しながら民団民主化運動に参加した。同時に、韓青は法的地位および外国人学校法案反対運動を展開していたため、民団執行部や韓国政府と対立していた。ついに、1972年韓青は民団傘下団体を取消され民団から排除された。
同年、南北共同声明が発表されると、民団民主化運動勢力である元民団幹部らとともに南北共同声明を支持する運動を展開した。しかし、韓国政府が維新体制に入ってから祖国統一に対する期待が崩れてしまった。しかし、当時日本に滞在していた金大中の講演から影響を受け韓国民主化運動に目を向けるようになった。韓青は、民団民主化運動勢力と金大中が「連帯」して結成した韓国民主化運動のための組織である「韓国民主回復統一促進国民会議日本本部」(韓民統)のメンバーとして活動した。
以後、韓青は独自的な運動を展開しながら、韓民統の「行動隊」として韓民統の韓国民主化運動を支えた。韓青は、4·19革命の精神に基づいて活動したが、主に労働者と在日朝鮮人政治犯の支援運動を中心に活動した。また、80年代に入ってから弱体化した韓民統を支えながら韓民統の運動の実践的な部分を多く担うようになった。そして、韓青は70年代に入って個人レベルの権利獲得運動への支持·支援をも積極的に行った。
韓青は、元在日朝鮮人政治犯の徐勝が提起した「積極的民族主義」を発展させ祖国に働きかける主体的な存在になろうとする意志を込めた「建国․帰国思想」に基づいて運動を展開した。そのため、韓青は祖国の文化に接することができる文化活動を通じて韓国民主化運動を展開した。また、そのために祖国の文化や歴史、韓国の政治·社会に関する学習そしてウリマル(朝鮮語)学習などを行った。
以上のような韓青の活動に対し韓国政府は警戒し、けん制した。また、日本政府は公権力をもって韓青を弾圧した。このような状況においても、韓青は運動の過程で生まれてきた組織としての自信に基づいて韓国情勢の変化に合わせ積極的に行動し、その一環となるのが「民主化」の達成後の祖国統一運動への参加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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