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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바이런의 부활— 1923년 바이런 사후 100주년제로부터 마키무라 고(槇村浩)의 「바이런·하이네」까지 — = The Revival of Lord Byron through Marxism ―From the Centennial Anniversary of Byron’s Death to Makimura Hiroshi’s Long Poem Byron, He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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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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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reviews the significance of Byromania, the collective feverfor Lord Byron and his poetical works, in Japan between the 1900s andthe 1930s.
The decline of Byromania in Japan had started since the JapaneseByromaniac Kitamura Tokoku’s suicide in 1894, and the victory of theRusso-Japanese War (1904-05) made it decisive. This was because thevictory of the war triggered off the literary campaign of naturalism, whichmade Byronic romanticism outdated. Byron was disregarded, neglected,and forgotten.
There was a revival of Byromania, however, in the 1920s, especiallyaround 1924 which marked the centenary of Byron’s death, in Greece in1824. This Contennial anniversary encouraged some literary critics toreinterpret the significance of Byron in a contemporary context, and torediscover his radical liberalism. He was regarded as a radical spirit whoforeshadowed the revolutionary spirit of the Russian Revolution, and in theprevailing context of Marxism, Byron was revived as a proletarian hero.
On the other hand, some critics regarded him as a snobbish bourgeoisanti-hero, condemning his arrogant aristocratism and egotism. For example,the proletarian poet Makimura Hiroshi wrote a long poem Byron, Heine(1936) which depicted Byron in this light, and he was also reviled as abourgeois anti-hero by the Marxist proletarian movement.
Thus, there was a turning point in the phenomenon of Byromania in the1920s:Byron had fallen into oblivion, but with the changing spirit of thetimes his popularity cult resurfaced in response to the growing enthusiasmfor Marxism in 1920s Japan. The meaning of the Japanese Byron revival,between the 1900s and the 1930s, cannot therefore be correctly understoodwithout taking Marxism into consideration.
본고는 190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친 일본의 바이런 열광, 곧 바이런 혹은그의 시 작품에 대한 집단적인 열광의 추이가 의미하는 바를 밝힌다.
일본에서 바이런 열광이 쇠락하는 징후는 일본의 바이런 열광자였던 도코쿠가 1894년 자살한 이래 시작되었지만, 러일전쟁의 승리가 그 흐름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러일전쟁의 승리가 자연주의문학운동이 융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바이런류의 낭만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조로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바이런은 경시되고 무시되었으며 망각되었다.
그렇지만 바이런 열광은 1920년대, 특히 1924년 무렵부터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해는 바이런이 1824년 그리스에서 사망한 때로부터 정확히 100년에 해당하는 시점이다. 문학가 가운데에는 이 100주년 기념을 통해 바이런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이런의 의의를 동시대의 문맥 안에서 재해석하면서 그의 급진적 자유주의의 의미를 재발견한 것이다. 그의 급진적 자유주의는 러시아혁명을 일으킨 혁명 정신과 같은 선상의 급진적 정신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바이런은 그의 사후 100주년 기념과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던 동시대의 문맥에 힘입어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바이런을 프롤레타리아 영웅으로 삼는 한편, 그의 오만한 귀족주의와 에고이즘을 비판하면서 그를 속물적인 부르주아계급의 반(反)영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시인 마키무라 고의 「바이런〮·하이네」(1936)는 바이런을 그러한 반영웅으로 묘사한 장시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타리아운동의 문맥 안에서 바이런은 부르주아의 반영웅으로도 부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920년대에 바이런 열광의 현상은 하나의 전환점을 보인다. 바이런은 한때 망각되었지만, 1920년대 일본의 마르크스주의가 그를 수용하면서 시대정신의 표면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190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바이런 부활의 의미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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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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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3 | 0.53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6 | 0.6 | 1.426 | 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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