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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 기록으로 보는 3·1혁명> 3·1혁명과 친일파의 대응 양태 = March First Revolution and the confrontational aspect of pro-Japanese collabor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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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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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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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09-138(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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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의 3·1혁명은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일대사건이었다. 3·1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과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의 실현이라는 민족혁명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의 꿈은 민족혁명에만 그치지 않았다. 3·1혁명은 국민이 주권을 갖는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제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 실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3·1혁명은 민주혁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혁명은 혁명에 대한 반동 곧 반(反)혁명을 수반한다. 3·1혁명도 반혁명에 직면했다. 3·1혁명이 이루려고 한 민족·민주혁명의 일차적인 반대세력은 식민통치권력이었다. 일제는 비무장의 만세시위대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 와중에 수천 명이 학살되었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3·1혁명의 반대편에 선 것은 일제만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3·1혁명을 거족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3·1혁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3·1혁명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나아가서는 3·1혁명에 반대한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친일파가 그랬다. 3·1혁명은 민족·민주혁명을 추구한 민족운동 세력과 반민족·반민주의 길을 걸은 친일파의 분화가 본격화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3·1혁명은 민족운동에도 새로운 전기가 되었지만 친일파에게도 일제 식민통치의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친일파는 그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친일파는 일제의 강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친일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다. 친일파에게도 나름의 친일 논리가 있었다.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에서도 유력한 정치세력이 되기를 원했던 친일파의 경우는 더 그랬다. 이러한 의미에서 3·1혁명은 친일파에게도 강제병합 못지않은 일대사건이었던 것이다.
일부의 친일파는 3·1혁명으로 조성된 일제 식민통치의 위기를 자신들의 정치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파악했다. 그러면서 3·1혁명 이후 일제가 추진한 친일파의 육성이라는 새로운 정책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려는 했다. 친일파는 각종 매체를 통해 3·1혁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노골적으로 3·1혁명 저지를 내건 단체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기꺼이 반혁명세력이 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3·1혁명 이후 일제가 표방한 문화정치 아래 친일파는 참정권운동 등의 활발한 정치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3·1혁명은 역설적으로 반혁명세력인 친일파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한 것이다.
Every revolution in the world is accompanied by a reaction to the revolution, so-called counterrevolution. March First Revolution also faced its counterrevolution. Japanese Empire did not stand alone against the Revolution.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also opposed the revolution and refused to participate in it. March First Revolution became a turning point for a National revolution in Korea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nd simultaneously a political opportunity for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The pro-Japanese actively tried to make the opportunity real. They realized the crisis of Japanese rule as a chance to get their political desires in Korea.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clearly stated that they opposed March First Revolution and took the head in stopping it. Under the cultural rule that had proclaimed by the Japanese Empire since the Revolution, the pro-Japanese led political movements such as suffrage movement. For this reason, March First Revolution also served as a momentum to strengthen the political power of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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