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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王碑, 父王의 運柩 앞에서 靑年王이 보낸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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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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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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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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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吉林省 集安市 동쪽 禹山下古墳群에서 19세기 말에 발견된 고구려 시대 거대 비석을 우리는 흔히 ‘廣開土王碑’로 부른다. 이러한 명칭은 이 비석이 그의 아들 長壽王이 죽은 아버지 광개토왕의 업적과 영광을 찬양하고 선전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전제를 깔았으며, 실제 이런 이해가 이 분야 직업적 학문 종사자 사이에서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를 과연 그렇게 부를 수 있는가?
우선 이 비는 광개토왕(릉)만을 위한 기념비가 아니라 광개토왕릉을 포함하는 고구려 先代 왕들의 무덤이 밀집한 왕가의 공동묘지(royal cemetery) 전체 관리에 대한 사항을 규정한 기념비라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기는 힘들다. 이 비석 자체에는 왕가 공동묘지의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엄격하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광개토왕이 구상한 것처럼 기술되지만 우리의 분석은 이런 관리 시스템은 장수왕의 생각이었다. 설혹 이런 시스템이 그의 아버지인 광개토왕의 생각이었는지 모르나 그것을 실제 실행에 옮긴 이는 장수왕이었다. 그렇다면 장수왕은 무엇을 위해 생각을 했고, 이를 통해서 어떤 효과를 누렸을까? 비문을 포함한 다른 기록을 종합할 때 장수왕은 즉위 당시 나이가 18세에 지나지 않아 왕으로서의 본격적인 권위를 발휘하기 대단히 힘들었다고 판단되다. 이런 그가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이 비를 세울 당시에는 21세였다. 동양의 전통적인 왕위 계승 시스템에서는 선왕의 삼년상이 끝나는 시점이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친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본다면 장수왕은 아버지가 죽고 즉위한 바로 그때 실질적인 왕이 아니라 이 비를 세우는 그 시점에서 진정한 고구려왕으로 등극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비는 장수왕의 親政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런 분석은 이 비에 담긴 내용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비문에는 신성불가침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 선대 왕릉 묘역의 권리를 침범하는 당시 유력 권력자들에 대한 경고로 일관한다. 요컨대 이 비문 내용은 신성불가침 구역을 침범하지 말고 또한 이들 구역을 관리하는 묘지 관리인들을 사사로이 매매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고가 진정한 친정을 시작하는 젊은 왕의 선전포고와 같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른바 광개토왕비는 21세 젊은 왕이 재위 시절 절대 권력을 휘두른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빌려 왕국을 통치하고자 한 기념비로 보며 따라서 이 비는 ‘by 장수왕, for 장수왕, of 장수왕’으로서의 장수왕비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The enormous stele found in Jian, China, which was the early capital city of Goguryo, is most commonly called as the Stele of King Gwanggaeto. The name comes from the basis that the son (King Jangsu) erected the stele to honor and propagate his father’s achievements and this understanding is commonly accepted amongst scholars in this field. In order for it to be called the Stele of Gwanggaeto, the stele has to satisfy one or more of the following three conditions. The stele must be either of Gwanggaeto, by Gwanggaeto, or for Gwanggaeto.
However analysis on this stele does not yield results that satisfy any of these conditions. In fact the Stele of Gwanggaeto is by all means, of Jangsu, by Jangsu, and for Jangsu. According to the analysis, this stele was not erected to honor just the tomb of Gwanggaeto as is commonly accepted, but rather is a monument that stipulated the regulations for managing the entire royal cemetery of the Goguryo kings, including the tomb of King Gwanggaeto. The engravings on the stele elaborates as though the organized system of management was devised by King Gwanggaeto, but on a closer look it can be conjectured that the system was in fact operated by King Jangsu. It may have been King Gwanggaeto’s idea but the person executing it to real life was King Jangsu. Then what was the motive of King Jangsu, and what effects were he aiming for?
Various sources including those written on the stele gives us the information that King Jangsu was 18 years old when he took the throne. Initially it would have been very difficult for him to exercise strong powers as king, however this stele was erected when he was 21 years old, ending the three years’ mourning period for his father. In the traditional East Asian succession system, the timing of becoming a genuine independent “King” starts when the three years mourning period for the previous king has ended. With this in mind, it can be considered that King Jangsu finally became the real king of Goguryo when he erected this stele, rather than when he took the throne.
This stele was a signal informing the shift of power to King Jangsu, and this can be confirmed from the contents of the stele. The epitaph concentrates mainly on giving warning to the influential powers that intruded the royal cemetery of the Goguryo Kingdom. It specifies not to trespass the cemetery of sanctity and not to privately buy or sell off management officials of the area.
This warning can be considered as a declaration of a young king that has started to exercise his power. In this context this stele is a monumental evidence of a 21 year old youth attempting to control his kingdom by borrowing his powerful father’s charisma, and because of that, should be called the Stele of Jangsu, by Jangsu, and for Jan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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