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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村江戰鬪 이전 倭國의 遣唐使 -唐의 서북방 정세변화를 중심으로- = Japanese Envoys to China(63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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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Japan was an island nation, it was aware of China's change of situation through the missions of Goguryeo and Baekje. In 623 students who studied in China suggested exchanges with China, but Japanese rulers were indifferent. At that time, China was not an economic or military power. In 626, Dang Tae-jong also bought peace by giving a large fortune to Dongdol-dong. The change came suddenly. In 627 a rebellion broke out against the Dongdol stream, and a number of livestock died in the event of a dzud. In February, 630, the Chinese military defeated the main force of Dongdol, which weakened. Koguryo envoys reported the news to Japan in March, 630. This is why Japan sent its first envoy to China that year In 631, Japanese envoys returned to Japan and Chinese envoys came to Japan with them. But they had an argument with the Japanese king, and the relationship was severed. Twenty-three years later, the Japanese government sent envoys to China twice. On May 26, 649, Tang Tae-jong died. His son, Tang Koajung, had no charisma. Many powerful nations have turned against China. In October of 649, Tibet threatened to invade China, and Asana-Haro completed the reunification of the Western TÜRK. Koguryeo also encroached on the East Mongolia area.
Then, China tried to improve the situation by offering cultural benefits to neighboring countries. The Emperor presented Tibet with enormous supplies and engineers. He also donated goods to the Far West countries, Kucha. Japan, which is located behind China's enemy Koguryeo, would also benefit from the Emperor. In April 653, Japan dispatched envoys to China. They returned home with a large collection of documents and treasures from the emperor. In February 654, the Japanese government sent envoys to China again. The Japanese envoy, who met the emperor, received an unexpected letter. As Silla was invaded by Baekje and Goguryeo, a nearby Japanese kingdom was urged to send troops to save. However, Japan ignored the order of the Chinese emperor and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with Goguryeo and Baekje. The Chinese emperor opened his eyes to hostility toward Japan, and Silla's relationship with Japan was also cooled.
In December 657, there was a major change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The Chinese army defeated the West Turk. Tang Dynasty became the sole superpower again. In April 659, King Silla made a military request to China, and the Chinese emperor decided to dispatch troops to the Korean Peninsula at the end of that year. Later that year, Japanese envoys appeared in the Chinese capital. Immediately after December 3, the Japanese envoys were put in jail on orders from the emperor. They had to prevent the discovery of China's plan to invade Baekje.
倭國은 섬나라였지만, 三國의 사절들을 통해 중국의 정세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다. 623년 귀국한 大唐留學生 惠日이 당과의 교류를 건의했지만 왜조정은 무관심했다. 隋末 내란을 막 수습한 당나라는 강국이 아니었다. 특히 東突闕에게 약자였다. 626년 쿠테타로 즉위한 唐太宗도 東突闕에 막대한 재물을 주고 강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627년 薛延陀와 回紇이 東突闕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켜 頡利可汗의 군대 일부를 격파했다. 동시에 몽골고원에 天災(dzud)가 일어나 東突闕의 수많은 가축들이 죽었다. 이듬해 奚 ․ 霫 ․ 契丹족과 인근의 고구려도 당에 줄을 섰다. 628년 9월 營留王(建武)이 당에 封域圖를 바쳤다.
630년 2월 李靖이 陰山에서 頡利可汗의 주력을 격파하여 東突闕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3월 유목군장들이 스스로 唐太宗에게 ‘天可汗’이라는 존호를 올렸다. 630년 3월 奈良에 도착한 고구려 사신은 이 소식을 倭國에 전했다. 막 즉위한 舒明天皇이 같은 해 8월에 1차 遣唐使를 파견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31년 倭國사신은 唐太宗을 알현했고 귀국길에 당의 遣倭使 高表仁과 동행했다. 그러나 高表仁은 의례를 두고 倭國 왕과 다투었고,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로부터 23년 후 倭國은 갑자기 2차례(653년 2차·654년 2차)에 걸쳐 당에 사신을 파견한다.
649년 5월 26일 唐太宗이 죽고 아들 李治가 즉위했다. 唐高宗은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상속받을 수 없었다. 주변 강국들이 일어섰다. 649년 10월 토번왕 승쩬깐포가 唐高宗의 외삼촌 長孫無忌 등에게 불충한 짓을 하면 장안에 군대를 보내 토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阿史那賀魯는 1년 6개월 만 西突闕의 재통일을 완수했고, 타림분지와 파미르 고원을 넘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고구려 역시 동몽골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자 당은 주변 나라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베풀어 상황을 호전시키려 했다. 唐高宗은 토번에게 雜綵 3천단과 養蠶 종자 및 술・맷돌・종이・먹을 만드는 장인들을 보내 주었다. 西突闕과 가까운 龜玆國에도 자치권을 주고 물자를 증여했다. 고구려 배후에 위치한 倭國도 이러한 혜택을 받을 터였다.
倭國의 孝德天皇은 호기를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653년 夏4월 倭國은 2차 遣唐使를 파견했다. 그들은 이듬해 황제가 내린 다량의 문서와 보물을 가지고 귀국했다. 孝德天皇은 654년 2월에 3차 遣唐使를 파견한다. 唐高宗을 만난 倭國사절은 예상치 못한 唐高宗의 璽書를 받았다. 신라가 백제 ․ 고구려로부터 침공을 받아 위급하니 가까이 있는 倭國이 군대를 보내 구원하라는 것이다.
655년 倭國 사신이 귀국했을 때 150명에 달하는 대규모 백제 사절단이 와 있었다. 璽書에 대한 관심은 고구려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56년 8월 8일 고구려는 倭國에 81명에 달하는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바로 다음 달에 倭國의 답사가 고구려로 파견되었다.
倭國은 고구려·백제와 돈독한 관계를 지속하여 황제의 뜻과 배치되는 길로 가고 있었다. 그것은 唐帝國으로 하여금 倭國에 대한 적개심에 눈을 뜨게 했고, 결국 신라와 倭國의 관계도 냉각되었다.
657년 12월 중대한 국제정세 변화가 있었다. 蘇定方이 이끄는 당군이 西突闕 주력을 격파하여 당나라가 다시 유일강대국의 자리에 복귀했다. 659년 4월 김춘추는 당에 청병을 했고, 唐高宗은 그해 연말에 백제파병을 결정했다. 마침 그해 말 倭國의 4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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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23 | 통합 | KCI등재 |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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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9 | 0.79 | 0.7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2 | 0.66 | 1.364 | 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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