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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 嘉慶道光期 西北史地學 연구의 역사적 의의 = The Significance of Frontier Studies in the Jiaqing-Daoguang Period of the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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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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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316(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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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가경 도광기 신강을 중심으로 한 서북사지학 연구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는데 그 요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건륭 말 이후 한인 관료 지식인들의 위기의식이 심화되고, 문제해결을 위한 경세론적 관심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내지의 인구압 해소방안과 관련하여 새로운 강토 신강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신강정복 후 간행된 유관 관찬서적 및 각종 견문록들의 유포 결과 서역지역을 황량하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보아왔던 전통적인 시각에 대한 교정이 이뤄지기 시작하고, 나아가 그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어 자항기르의 반란으로 신강통치가 크게 흔들리게 됨에 따라 조정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신강문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확대되면서 서북사지 연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가경기 신강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이리장군 송균이 지방지편찬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운사, 서송 등 한인 유배관료들을 동원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 중 특히 이후 서북사지학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서송이었다. 고증학적인 전통 사지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이리로 유배된 후 송균의 후원 하에 세밀한 실지고찰을 거쳐 伊犁總統事略을 완성하였었다. 서송의 북경귀환 후 그것이 송균을 통해 도광제에게 진정되어 新疆識略이라는 제명을 하사받게 되면서, 자항기르의 난으로 인해 신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과 맞물려 북경의 관료 학자들 사이에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를 중심으로 서북사지에 관심을 지닌 일군의 관료 학자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네트워크에서 서송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다른 인물이 공자진이었다. 家學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서북지역 輿地學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당시의 사회적 혼란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이미 1820년에 신강행성설치 주장을 제기하였다. 공은 그 간 한편으로는 춘추공양학을 수용하여 역사발전과 변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켜 가는 중에, 위원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신강문제에 대한 관심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송을 방문하여 자료와 정보를 교환하며 서북사지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신강정세의 악화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서북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여 이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서송처럼 전통 여지학과 실증적인 고증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심요도 그들과 접촉하면서 공자진과 유사하게 신강을 무익한 땅이라고 보는 관점을 비판하고, 새로운 강토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반드시 신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가경 말 도광 초에 걸쳐 공자진, 심요를 비롯한 한인 관료 학인들이 대내외적인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새로운 강토의 현실적 효용성을 재인식하게 되면서, 서북지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그 과정에서 일부 한인 관료 지식인들의 영토인식과 중국인식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량하고 무용한 이적의 땅으로 간주되었던 서역을 내지와 다를 바 없이 포기해서는 안 되는 중국 영토의 불가분할의 일부분으로 보는 인식이 분명하게 대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위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와 관련하여 한인 관료 지식인들 사이에서 신강을 확고하게 판도에 편입시킨 청조의 위업과 만주족 통치에 대한 주체적인 재평가가 이뤄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상황이 명말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으며, 따라서 일찍부터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경세론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와 관련하여 서북사지문제를 중시하게 되면서 청조의 중국지배와 영토확장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아편전쟁을 통해 중국이 직면한 새롭고 강력한 위험을 의식하게 되면서, 서방제국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 흔들리는 중국의 강력한 재통합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무기를 통해 만주족 지배층의 공적과 위업을 대대적으로 선양함으로써 무기력해진 당시 만주족 지배층의 자각과 분발을 촉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한인 지식인 관료들의 체제수호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런 입장을 기초로 이후 청조체제의 위기가 점증하는 상황에서도 당분간은 한인 관료 지식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체제수호를 위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In the Jiaqing-Daoguang period of the Qing dynasty there appeared a sudden rush of researches on the history and geography of the frontier areas focused especially on Xinjiang the significance of which the author attempted to elucidate in this paper. Those frontier studies came to be expedited by the rising tension in the frontier areas after Jahangir’s invasion of Xinjiang in 1820, tending to emphasize their strategic importance for coping with both external threats and internal crises.
Such scholar officials as Qi Yunshi and Xu Song who had returned from expulsion to Xinjiang undertook pioneering roles by publishing influential books and hosting meetings of concerned scholars. Gong Zizhen wa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scholar officials, who advocated for making a province of Xinjiang. Gong proposed emigration to Xinjiang from overpopulated interior regions for more efficient reclamation of barren lands there. While many other scholar officials argued for giving up western part of Xinjiang saying that it is too expensive to keep the useless land, Gong emphasized that Xinjiang is part of real Chinese territory insisting it is not different from the interior provinces and worthy of more active development.
Wei Yuan, sympathizing with Gong’s view, undertook a decade-long study on the history of conquest of Xinjiang and other frontier areas as well as suppression of internal rebellions which resulted in the publication of the Record of Sacred Military Feat in 1842. Herewith Wei hailed the great achievement of preceding Qing emperors so as to instill new vigor into the spirit of the rather enervated Qing leadership as well as to encourage Han Chinese literati to participate more actively in overcoming those days’ internal and external crises under the Manchu rulership.
After all, it seems through their frontier studies in the earlier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Han Chinese intellectuals can determine the boundary of Chinese territory newly on their own initiative to include the new lands formerly considered useless and barren, giving due credits to Manchu rulers for their role of military conquests, which resulted in helping consolidate the Manchu-Han Chinese cooperation during the ensuing twilight of the Qing dynasty at least for the time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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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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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5 | 0.75 | 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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