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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천도교청년회의 만세운동과 일제의 중국재류금지조치 = Independence Movement of North Kando Cheondokyo youth Adult Group and Japan’s Residence Prohibitive Measure in China
저자
황묘희 (평택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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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15-240(26쪽)
KCI 피인용횟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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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e 1860s, many Koreans living in mostly immigration is based only. More than 100,000 already at the beginning of 1910, the Koreans were living in emigration. The Manchu area there are many Patriots will prepare the asylum doctors are going to independence movement.
These are the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fter the end of World War I and independence movement want the chance of a response.
The Manchu area was active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ere planning to unite their independence movement. Cheondokyo and independence movement centered around Yongjung And Yunkil are going to struggle for their open and ready. News in Korea took place the 3․1 movement, they are going to struggle is unfolding which Cheondokyo.
In particular, only weeks into the region to develop their independence movement seeking the Patriot Office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religion.
The Manchu area, such as a live exercise over Cheondokyo were religionists. And these are the incessant anti-Japanese struggle to become a spiritual base.
Cheondoism is mainly of youths, the nation’s only primarily two weeks while raising awareness, anti-Japanese movement and deployment plan. One of them was the independence movement would north Kando Cheondokyo youth adult group. Their plan is to write to the Japanese. However, these activities are made to stress the Japanese authorities. Japan is to maintain the youth group members, policing cheondokyo reasons why People’s Republic of China was expelled from interfering with.
Exile measure is active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was an important means to expel the forces of independence movement was.
Japan is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o expel members of the Cheondokyo youth adult group take action. The reason is because they are upset that policing concerns.
북간도 지역은 1860년대 이후 많은 한인들이 계속되는 흉년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으로, 일제 강점초기 이미 10만이 넘는 한인동포들이 이주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이에 북간도를 포함한 만주지역은 1910년을 전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망명하여 한인이민사회를 기반으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한인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전후 국제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독립운동의 기회를 만들고자 만주지역과 중국 본토 및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한민족인 대동단결한 민족독립운동을 모색해 나갔다. 북간도에서 활동하고 있던 천도교계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도 국내 민족지사들과의 연계한 민족독립운동을 모색하는 한편 용정과 연길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항일시위투쟁을 준비하였다.
국내의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북간도의 천도교인들은 망명지사, 타종교계, 학생들과 연계하에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북간도를 포함한 만주지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은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종교사상과 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함으로 만주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는데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천도교 등 종교인들의 주도가 큰 몫을 하였고,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는데 정신적, 조직적 기반이 되었다.
동학이 천도교로 개칭, 조직 개편된 이후 천도교계는 국내는 물론 만주지역으로 진출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천도교계는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만주로 이주하여 인내천사상과 후천개벽사상을 정신적 근거로 민족 공동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항일운동의 전개를 모색해 나갔다. 그러한 활동 중의 하나가 천도교청년회 북간도 지회의 만세운동계획이었다.
북간도 지역에서 천도교청년회 활동하고 있던 오세환, 이윤백, 강순, 김하준, 이응렬, 전문, 김성관, 최동빈 등은 1921년 11월 워싱턴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을 재기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였다. 이들은 동년 8월 29일 한일강제합병일을 기하여 천도교청년동맹회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국자가를 중심으로 간도 각지에 천도교청년회의 포덕소를 설치하여 독립운동을 재기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들의 계획은 일제에게 발각되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으나 3․1운동 이후 기만적인 문화통치와 친일세력 육성책 등 국내외한국민에 대한 식민통치방식을 전환하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던 일제 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일제는 오세환 등 간도 천도교청년회 회원들의 활동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찾지 못하여 체포할 수 없게 되자 간도지역의 안녕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죄명으로 1922년 1월 13일부터 3년간 중국에 머무를 수 없게 추방하는 중국 재류금지처분을 내렸다. 재류금지처분은 중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요주의 인물을 추방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 법령이었다. 재류금지제도에 의한 처분은 1920년 이후 한인민족운동가에게 남발되었는데, 증거와 시간이 걸리는 사법적 조치보다 영사의 판단에 따라 집행되는 추방명령이 빠른 시간안에 일제 당국이 원하는 치안유지 명분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일제 당국은 간도 천도교청년회의 만세운동 관련자들도 중국내에서의 활동을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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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12-23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Donghak Studies ->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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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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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 | 0.7 | 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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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 | 0.55 | 0.797 | 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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