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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경상도 북부지역 전세 조달방식의 변화와 作錢制의 실시 = Changes of Land tax procuring method and fulfillment of jakjunje(作錢制) at northern area of Gyeongsang-do in the 17~18th centuries
저자
문광균 (충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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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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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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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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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9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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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ungjeo-eup of Gyeongsang-do was 12 guns and hyuns under the Joryeong and Jukryeong. After the 17th century when the war was finished, government established all kinds of financial policies and reduced the burden of transportation costs for guns and hyuns of Gyeongsang-do. As a representative case, they offered a bride of Land tax of central region by changing it to obscurity, restarted ship transportation in the area of southern coast and provided the costs of ship within the original costs. But, in the process of government, only Yeoungjeo-eup didn’t receive benefits of transportation costs’ reduction among the guns and hyuns because the distance from this area to Seoul was relatively closer than other guns and hyuns. As a result. Yeoungjeo-eup should transport grains to Gaheungchang by land after the 17th century and then, pay a bride to Seoul through the ship transportation. All of excessive transportation costs occurred by the process were shifted to the burdens of Yeungjeo-eup people.
Land tax procuring method of Yeoungjeo-eup was displayed in new direction after the 18th century because of the Junhwang(錢荒) shown in the period. Coins were insufficient due to the Junhwang, so central governors found how to secure coins. One of the methods was Hwannap(換納). Hwannap is the method that central governors offered field grains of guns and hyuns to hojo under the approval of government while the guns and hyuns received the costs by coins or obscurity. Central governors started to secure lots of coins by Hwannap and the main object was Land tax of Yeungjeo-eup. Hwannap became an important measure to secure coins and then, hojo started to do jakjun Land tax and receive a bride in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Jakjun custom of Yeungjeo-eup was continued until the middle stage of the 18th century. But, jakjun led by hojo caused several problems. Because of the jakjun of field grains, there were side effects that grains were insufficient and civil complaint due to the hojo’s high appropriation of jakjunga(作錢價). The latter problem was intensively focused because it didn’t show any effect of transportation costs’ reduction, a goal of jakjun. Hojo’s situation of possessing coins became very poor, so government restarted to discuss about jakjun. And, in the next year, the 25th year of Yeungjo(1749) and 31st year(1755) of Yeungjo, they announced Jakjun(作錢) julmok and did jakjun for Land taxes of Joryeong 7 eups and Jukryeong 7 eups.
作錢은 전세의 수취 품목인 쌀과 콩을 동전으로 대체하여 징수하는 방식이다. 동전은 화폐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연구 대상으로 주목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은 화폐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작전이 도입되었다는 논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작전제가 실시되는 배경과 목적을 분석하였다. 조선후기 전국의 군현 중 전세가 작전된 지역으로는 경상도의 영저 12읍, 황해도의 산군 4읍과 장산 이북 11읍, 강원도 영서 5읍 등이 있었다. 그 중 본 논문에서는 경상도 영저읍을 대상으로 전세의 작전화 과정을 분석하였다. 경상도의 嶺底邑은 조령과 죽령 아래에 있는 12개의 군현이다. 17세기 이후 도내 여타 지역이 세곡의 운송 부담이 다소 줄어든 것과 달리 영저읍은 조선전기와 같이 전세를 육로로 가흥창까지 수송한 다음 선운을 통해 서울까지 상납해야만 하였다. 그것은 영저읍이 서울까지의 운송 거리가 다른 군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운송비는 모두 영저읍민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영저읍민은 전세곡의 운송 부담을 완화하고자 作木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진휼정책의 일환으로 간혹 시행할 뿐 제도화하지 않았다. 영저읍의 전세 조달 방식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이 시기 발생한 錢荒때문이었다. 전황으로 동전이 부족해지자 중앙아문들은 동전 확보 방안을 모색하였다. 경리청과 진휼청 등 중앙아문은 換納이라는 방법을 통해 동전을 확보하였는데, 그 대상 지역 중 하나가 경상도 영저읍이었다. 환납이 동전 확보에 주요한 수단으로 부상하자, 18세기 전반부터는 호조가 직접 전세를 작전하여 상납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징수방식은 18세기 중엽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다. 영조 23년(1747) 작전은 환산 과정에서 호조가 작전가를 높게 책정한다는 비판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호조의 동전 보유 상태가 열악해지자 영조 25년(1749) 정부는 영저읍 중 조령 7읍의 전세 작전을 제도화하였고, 동왕 31년(1755)에는 죽령 5읍에도 작전제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전세 작전이 호조의 동전 확보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작전 절목을 반포하면서 작전가를 낮춰 책정하고, 부가세와 태가를 작전제의 대상에 모두 포함시킴으로써 영저읍민의 운송비 부담을 최대한 경감하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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