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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19세기 중반 노론 척사론의 전개 = The Development of Noron Cheoksaron from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to the Middle 19th Century
저자
노대환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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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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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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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3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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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the Cheoksaron was dominated by the Giho Namins, but there were criticisms on Christianity among the Noron members. The Cheoksaron of Noron was developed by the Sanrim and Bukhak faction, both of which were critical of Christianity. While the latter maintained an approach of education in terms of measures against the religion, the former insisted on thorough punishments.
Entering the 19th century, the Noron Byeokpa seized the power, took in full-scale suppression operations against Christians, and expelled the Namins. As a result, the Noron Sanrim faction of Noron led the Cheoksaron instead of the Namins. The Sanrim faction was afraid that Christian Namins might invade Chosun in combination with the western powers and focused on investigating the ideological causes of the Namins belief in Christianity. It was under the goal that they ferociously highlighted the connections between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and Christianity. The Sanrim faction was also critical of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being concerned with the Bukhakron members of Noron.
Entering the latter half of the 1830s, the Cheoksaron of Noron took another turn as Lee Hang-ro and Lee Jeong-gwan wrote books about Cheoksa. While Lee Hang-ro inherited and reinforced the positions of the Sanrim faction, Lee Jeong-gwan suggested an eclectic Cheoksaron between the Sanrim and Bukhakron faction. Their books triggered the activation of Cheoksa discussions among the Norons.
In the middle of the activation of Noron's Cheoksaron, Kim Pyeong-muk and Lee Hang-ro reinforced the positions of the Sanrim faction and Yun Jong-ui and Park Gyu-su took different positions from the Sanrim faction. There were clear differences of perceptions between them. The focal point of controversy was how to evaluate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which demonstrated the reinforced aspects of Cheoksaron and predicted the differentiation of Wuijeongcheoksaron and Dongdoseogiron.
18세기 후반의 척사론은 기호 남인계가 주도하였지만 노론 내부에서도 천주교 비판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노론의 척사론은 크게 산림 계열과 북학론 계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산림 계열이나 북학론 계열 모두 천주교에 비판적이었지만 대책에 대해서는 북학론자가 교화주의적 태도를 견지하였던 데 반해 산림계는 철저한 처벌을 주장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 노론 벽파가 집권하여 천주교도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과 함께 남인을 축출하면서 남인을 대신하여 노론 산림계가 척사론을 주도하게 되었다. 한편 북학론자들의 경우는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척사 문제에는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이 시기 산림계의 척사론은 남인을 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점에 특징이 있다. 천주교도 남인이 서양 세력과 결탁하여 조선을 침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던 산림계는 남인이 천주교를 신봉하게 된 사상적 원인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였다. 양명학과 천주교의 관련성에 대한 집중적인 부각은 그러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산림계는 서양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노론 내부 북학론자들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노론의 척사론은 1830년대 후반에 들어 이항로와 이정관이 각각 「論洋敎之禍」와 「闢邪辨證」을 저술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항로가 산림계의 입장을 계승하여 심화시켰던 반면 이정관은 산림계와 북학론계의 입장을 절충한 척사론을 제기하였다. 이항로와 이정관의 척사서 저술을 계기로 노론 내부의 척사 논의는 크게 활성화되었다. 김평묵은 「벽사변증」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붙인 「闢邪辨證記疑」를 저술하였고, 이정관과 친밀했던 윤종의는 『闢衛新編』을 펴냈다. 한편 윤종의의 벗 박규수는 「闢衛新編評語」를 통해 척사의 논리를 한층 심화시켰으며 박규수의 친우 남병철이 자신의 주장을 펴고, 또 이항로가 나서서 정통 성리학계의 입장을 강조하는 등 연속적인 움직임이 이어졌다.
노론의 척사론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김평묵과 이항로가 산림계의 입장을 강화한 반면 윤종의와 박규수 등은 산림계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 등 인식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논란의 초점은 주로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 문제였는데 이는 척사론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위정척사론과 동도서기론의 분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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