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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 보이는 왜계백제관료(倭系百濟官僚) = 『日本書紀』に現われた倭系百濟官僚
저자
박재용 ((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9-52(24쪽)
KCI 피인용횟수
3
제공처
왜계백제관료는 5세기 후반단계부터 백제가 가야와 왜국의 유력씨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을 계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왜국의 유력씨족 출신이 많지만 백제계 도왜인의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대화정권의 씨성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은 대왜외교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백제측의 의도가 작용했기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백제와 왜국 모두에게 신속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백제의 왕도에 체재하면서 백제를 위해 활동한 사람들로 보아야 한다. 백제는 왜계백제관료를 왜국뿐만 아니라 안라에도 파견하였다. 왜계백제관료의 외교 대상이었던 소위일본부 관련 인물들은 대화정권에서 파견한 사신이 아니라 6세기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가야지역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본열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대외활동은 『일본서기』 단계에서 천황의 명에 의해 활동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백제는 이들과 계보 또는 출신지역과 관계가 있던 왜계백제관료를 파견함으로써 반백제적 성향을 바꾸어 신라를 견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안라에서 실질적으로 반백제정책을 주도하던 가야소국 수장층에 의해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한편 왜계백제관료의 활발한 대왜외교 활동은 성과를 거둔 듯 흠명기에는 백제와 왜국의 활발한 교섭이 기록되고 있다. 당시 백제로서는 급변하는 왜국 내부의 정세를 파악하고 언어 등의 통교상의 가장 중요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왜계백제관료의 협조는 절실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6세기 중엽 전후에 일어난 한반도의 세력 다툼 속에서 백제의 대왜외교는 더욱 긴박해졌고, 이 시기에 군사외교의 일익을 담당한 것이 왜계백제관료였다. 왜계백제관료의 활동기사가 『일본서기』 흠명기 이후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은 『백제본기』 기록의 잔존형태와 관계가 있다. 日羅의 도왜를 마지막 왜계백제관료의 소멸 이유로 거론하기도 하지만, 일라는 대가야 왕족 출신인 ‘가야계백제관료’라고 판단된다. 일라는 대가야의 멸망 후에 백제로 건너가 그의 집안내력과 함께 백제의 국정운영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달솔의 위치까지 올라 갈 수 있었다. 또한 승려로서의 활약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일라를 왜국으로 부른 것은 대반씨이며, 그 의도는 흠명대 이후 추락한 자신들의 부활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더보기倭系百濟官僚は,5世紀後半から百濟が加耶と倭國の有力氏族との密接な關係を結んだことを機械に登場される.彼らは倭國の有力氏族出身が多き,百濟系渡倭人の場合もあった.倭系百濟官僚が大化政權の氏姓をそのまま使用したことは對倭外交を有利して導かれる百濟側の意圖が作用したためである.したがって,倭系百濟官僚は百濟と倭國の兩方に臣屬されたとみることは困難で,百濟の王都に滯在しながら百濟のために活動した人□に見なければならない.百濟は倭系百濟官僚を倭國だけでなく,安羅にも派遣した.倭系百濟官僚の外交對象であったいわゆる日本府は大化政權から派遣された使臣ではなく,6世紀以前から獨自的に加耶地域と關係を結びながら,日本列島で移住してきた人□であった.彼らの對外活動は『日本書紀』編纂過程で天皇の命により活動したこととして變わるようになった.百濟は,日本府と系譜または出身地域と關係がある倭系百濟官僚を派遣することにより,反百濟的性向を變えて新羅を牽制しようとした.しかし,安羅で實質的に反百濟政策を主導していた加耶小國首長層によって大きな成果は收め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一方,倭系百濟官僚の活潑な對倭外交活動は成果を收めたよう,欽明紀には百濟と倭國の活潑な交涉が記錄されている.百濟は急變する倭國內部の政勢を把握し,言語などの通交上の重要な難點を克服するために,倭系百濟官僚の協調は極めて必要であった.さらに6世紀半ば前後に起こった韓半島の勢力爭いの中で百濟の對倭外交はさらに緊迫となり,この時期に軍事外交の一翼を擔ったのが倭系百濟官僚であった.倭系百濟官僚の活動記事が『日本書紀』欽明紀以後からもはや見えないことは『百濟本記』記錄の殘存形態と關係がある.倭系百濟官僚の消滅理由を日羅の渡倭と關連づけて理解することもあるが,日羅は大加耶の王族出身である「加耶系百濟官僚」と判斷される.日羅は大加耶の滅亡後,百濟に渡り,彼の家の履歷と百濟の國政運營に多くの寄與を認められて達率の位置まで上がったといえる.また,僧侶としての活躍もあったとされる.日羅を倭國に招待した主體は大伴氏であり,その意圖は欽明代以後,墜落した自己氏族の復活が目的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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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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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5 | 0.25 | 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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