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기획논문: 전근대 동아시아 역사속의 해양교류와 도시; 고려청자(高麗靑瓷) 출현(出現)의 수수께끼 = A Study on the Birth of Koryo Celadon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911.00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9-77(49쪽)
제공처
소장기관
본고는 고려청자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그 요인을 자기의 제작과 관련된 기술과 생산(자본) 그리고 수요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청자가 越窯의 청자제작기술을 토대로 하여 출현하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시기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940년대였으며, 이 시기에 다수의 越窯陶工들이 고려에 이주한 것으로 판단된다. 월요의 청자제작기술이 고려에 “전파”된 것과 관련하여 가장 큰 의문은 이 시기에 하필 월요의 도공들이 고려로 이주하였을까 하는 점인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본래 한반도에서 중국의 浙東地方으로 이주하여 월요에서 窯業에 종사하던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후예들이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즉 그들이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고려에 돌아왔으며, 그들을 통하여 월요의 청자제작기술이 고려에 전해졌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고려에서 월요의 청자제작기술을 “수용”하여 窯場을 설립하고 청자를 생산한 주체로는 고려정부와 호족들이 거론되어왔다. 하지만 고려정부가 청자의 생산을 주도하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들을 분석해볼 때,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신라말고려초의 유력자였던 豪族들이 한반도 출신 월요도공들을 받아들여 요장을 설립하고 청자를 생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고려의 “초기청자”요장들이 중서부지방에 산재해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지방의 호족들이 그 주역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즉 중서부지방의 호족들이 곧 생산(자본)의 측면에서 고려청자의 출현을 이끈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한편, 신라 말기에 禪宗이 유행하면서 승려층이 새로운 飮茶階層으로 등장하고 아울러 고려 건국 직후 태조의 불교정책에 힘입어 승려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들은 고려청자의 최대의 잠재적 수요층으로서, 누구보다도 이들이 수요(소비)의 측면에서 고려청자의 출현을 견인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초기청자의 생산품이 완 등 음다와 관련된 것들에 집중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보기This study originates from the question on what kind of factors created Koryo celadon and it analyzed such factors from the perspectives of technique, production (fund) and demand related to pottery manufacturing. The resul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It is widely known that Koryo celadon was created based on the celadon manufacturing technique of the Yue kiln(越窯). More specifically, it dates back to the 940s, immediately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by Koryo and it is assessed that many potters of the Yue kiln moved to Koryo at that time. The biggest question on the “spread” of the Yue kiln techniques throughout Koryo is why at this particular point of time the Yue kiln potters came to Koryo. It is understood related to the assumption that they were the people engaged in the pottery business in the Yue kiln after moving to the Zhedong(浙東) province in China from the Korean peninsula or theirdescendants. In other words, it is considered that the potters came back to Koryo right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of Korea and spread the Yue kiln techniques in Koryo. It has been mentioned that the government and the powerful local gentry (豪族) of Koryo Dynasty are the main agents who “embraced” the celadon manufacturing technique of the Yue kiln, built kilns and produced celadon. However, it is hardly convincing given the analysis on the grounds for the opinion that the Koryo government led the celadon production. It is rather highly possible that the powerful local gentry, the influential forces in late Silla and early Koryo period, embraced the Yue kiln potters of Korean origin, established kilns and made celadon. Moreover, considering that the kilns for “early celadon” of Koryo scattered over the Middle Western province, the leader would have been the powerful gentry of the province. In other words, it was the powerful local gentry of the Middle West province who led the creation of Koryo celadon from the perspective of production (fund). Meanwhile, with Zen Buddhism in fashion in late Silla period, the Buddhist monks emerged as a new group of enjoying tea. Thanks to the policy for Buddhism by King Taejo right after the establishment of Koryo, the number of the monks increased significantly. They were the biggest potential customer group of Koryo Celadon and drove the creation of Koryo celadon in terms of consumption. In this sense, it might be only natural that Koryo early celadon production was focused on tea-related wares such as tea bowls.
더보기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