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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후 上海 한인사회의 위생의료 생활 = Shanghai Korean Society's Hygiene Medicine around 1920
저자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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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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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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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29-168(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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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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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1919, Shanghai Korean society had yet to be big enough to conduct hygiene medicine activities in earnest. Before and after April 1919 when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was established, Shanghai Korean society expanded, enabling Korean residents' society to organize hygiene medicine work.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established in Shanghai as the first Korean republican government, required the Ministry of Home Affairs to control police and hygiene work. Therefore, the Provisional Government established a formal hygiene system, required of an earlymodern nation. Hygiene medicine in Shanghai Korean society was conducted within a limited scope by Korean Red Cross and Korean Residents' Organization (KRO) under the Provisional Government. Korean Red Cross primarily undertook to foster nurses and military doctors for waging Korean independence war. Thus, a Nurse School was established, and produced the first batch of nurses, but thereafter it was discontinued due to a lack of fund. One month after it was launched, Korean Red Cross began its first medical project. In the summer of 1919, when cholera hit Shanghai, KRC conducted vaccination for Korean residents.
KRO organized hygiene medicine activities for Shanghai Korean residents, such as lectures on hygiene, vaccination, and operation of freeservice clinics. Shanghai Korean residents could not afford to use the expensive local Western medical facilities, and could hardly use them due to mistrust of Westerns, and language barrier. Shanghai Korean residents were vulnerable to diseases due to poor environment and malnutrition. Many of them suffered from respiratory diseases such as lung disease, tuberculosis, and pleurisy. Thus, in Shanghai, there were not a few Korean doctors and hospitals that they opened. But such hospitals were smallsized and poor. Korean residents also ran pharmacies.
Ahn Changho suffered from various diseases since his childhood, making him particularly interested in medicine, hygiene and healthcare in relation to his diseases. Healthcare and hygiene medicine were one of his important concerns in his Shanghai life. He not only positively received the modern hygiene and healthcare practice, but also was profusely interested in traditional healthcare. To treat his physical weakness, he practiced diverse methods, such as hydrotherapy, cold bath, sitting and meditation, and physical training, as well as hospitalization, recuperation, and resting in hotels. Although hydrotherapy and sitting and meditation could not fundamentally cure his chronic diseases such as stomach disorder and bronchitis, he could apparently maintain mental and physical stability and health.
1919년 이전 상해한인사회는 본격적인 위생의료활동을 펼치기에는 그 규모가 크지 못했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상해한인사회가 확대되면서 교민사회는 위생의료 영역에서도 조직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상해에서 한국역사상 최초의 공화제정부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내무부가 경찰과 위생을 관장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럼으로써 임시정부는 근대국가가 갖추어야할 위생 제도를 형식적이나마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상해한인사회의 위생의료는 임시정부 산하의 대한적십자회와 대한교민단에서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행되었다.
대한적십자회는 발족한지 한 달 만에 첫 의료사업을 벌였다. 1919년 여름 상해에 호열자가 유행하자 교민들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하였던 것이다. 상해 교민들에 대한 체계적인 위생의료활동은 교민단이 수행하였다. 그것은 위생강연과 예방접종, 무료진료소의 운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교민단은 교민들의 위생 지식을 계몽하기 위해 위생 강연을 여러 차례 개최하였다. 교민단은 유인물 등을 배포하여 교민들의 위생, 청결을 강조했으며 부주의로 인해 화류병에 걸리지 않고 각자 개인의 건강을 유지하고 나아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교민단은 교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상해 한인들 가운데는 폐병이나 폐결핵, 늑막염과 같은 호흡기 계통의 질병이 많았다. 따라서 한인 의사들이나 의료시설이 없을 수 없었다. 상해에는 한인 의사들과 그들이 개업한 병원들이 적지 않았으나 대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안창호와 같은 개인의 위생의료 경험을 통해 상해 한인들의 위생의료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안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기 때문에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의료와 위생 혹은 양생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양생과 위생의료는 그의 상해생활 가운데 중요한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는 쇠약해져가는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수치료, 냉수욕, 정좌법, 체조훈련, 그리고 때때로 입원 휴양 혹은 호텔에서 정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물론 정좌 수행을 통해 위장병과 기관지염 같은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고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심신의 안정과 건강 유지에는 일정한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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