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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晋南北朝-隋唐時代 葬俗 · 葬具의 變化와 墓誌銘 = 그 資料的 性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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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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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명은 장속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葬具의 하나이다. 여러 장구들 가운데 墓碑와 墓誌銘은 가장 유사한 것이다. 물론 묘비가 紀功의 성격이 강하고, 묘지명은 標識의 성격이 강하지만 묘지명 문학이 난숙기에 들어선 당대, 특히 당후기가 되면 그 서술상의 구별은 그리 크지 않다. 묘지명은 曹魏시대 禁碑令 선포의 영향으로 묘 앞의 묘비가 묘속에 들어감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묘지명의 사회적 유행과 관련하여 필자가 남달리 관심을 가졌던 것은 강남 남조의 여러 왕조보다는 중원 북조의 왕조에서 크게 유행한 이유와 수?당대에 와서 묘지명과 묘비가 병존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필자는 前稿에서 묘지명은 금비령 반포이후 碑의 대체 장구로서 남조에서 먼저 출현했지만, 예제와의 합치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영향으로 발달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북조에서는 동진-남조처럼 금비령이 반포된 적이 없었지만, 유목민족의 고유의 장속인 즉 虛葬, 潛埋습속과 농경 한족의 碑銘 문화가 합쳐져 묘지명이 활발하게 유행하게 되었다고 추론하였다. 아울러 본고에서는 한대이후 당말까지 중국에서 발굴된 묘비와 묘지명을 계량적으로 시대별로 비교해 본 결과 한대(특히 後漢)가 墓前 葬具와 碑石의 시대라고 한다면, 동진-남조도 이 전통을 계승하였으며(물론 帝室의 墓葬文化에 한정), 北朝는 묘지명시대이고, 수?당시대는 묘비-묘지명 병존시대라는 결론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울러 묘지명이 북조-수?당시대에 유행하게 된 것은 유목민족의 葬俗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조에서는 위에서 보았듯이 묘비는 제실 구성원(太子?太子妃 이상)에게만 허용된 것이었고, 素族[귀족사대부])에게는 묘지명만이 허락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예제에 맞지 않는 묘지명이 별로 선호되지 않았다. 아울러 남조 제왕의 능묘에서는 묘지명 대신 哀策이 들어가고, 그 외 鎭墓文이나 買地券 등이 납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조[특히 북위]에서는 사회적 등급에 따른 묘지명 크기 등에 대한 규정을 발견할 수 없으나 발굴된 현물을 볼 때 규정이 있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아울러 수대에 이르면 장구 등에 대한 신분별 규정이 명확하게 등장한다. 다만 묘지명의 경우 묘비와는 달리 자의성이 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준수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묘지명의 사료적 가치는 제작 이후 이차 가공이 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높지만, 자의성이 강한 만큼 기존사료에 근거해서 이용해야 한다. 특히 묘비보다도 과장의 정도가 더 심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pitaphs (muzhiming 墓誌銘) were included in funeral instruments as the funeral customs changed. The function of epitaphs was similar to that of tombstones (墓碑 mubei), more than any other funeral instruments, There was a subtle difference between epitaphs and tombstones in that tombstones aimed to commemorate one’s feat, while epitaphs were supposed to demonstrate personal history of the dead. However, during the Tang Dynasty, especially in the second half of the Tang, when epitaph literature flourished, it was hard to tell the difference between tombstones’ way of description and epitaphs’. During Cao-Wei dynasty, tombstones, which were located in front of the tomb had to be moved into the tomb pit because the government prohibited using them. With regard to the epitaph’s popularity, I would like to focus on two questions. First, Why were epitaphs more popular in Northern Dynasties than Southern Dynasties? Second, why did both tombstones and epitaphs co-exist during Sui-Tang Dynasties? Previously, I have concluded that epitaph culture emerged as a substitute for funeral instruments in Southern Dynasties, but it did not flourish as it was regarded unfit for the legitimate funeral ceremony. On the other hand, epitaphs were extremely popular in Northern Dynasties even though they did not prohibit the tombstones. I have inferred that the popularity came from the intermixture of nomadic tribes’ burial customs - fake burial and secret burial - and Han Chinese’s epitaph culture. Along with this, I analyzed the tombstones and epitaphs in Chinese history from Han Dynasty to Tang Dynasty quantitatively. Putting funeral instruments and tombstones in front of graves was popular during Han period and this trend was still in fashion during Eastern Jin and Southern Dynasties, while epitaphs flourished in Northern Dynasties. During Sui-Tang period, tombstones and epitaphs co-existed. Also, I am certain that the popularity of epitaphs in Northern Dynasties and Sui-Tang period has much to do with the peculiar burial customs of nomadic tribes.
In Southern Dynasties, while the scholar-officials could only have epitaphs, the imperial family also possessed tombstones. However, epitaphs were not favored as they were regarded unfit for the burial custom. It is not certain that there were regulations about standards on epitaphs. It is probable that they put lament texts (aice 哀策) instead of epitaphs in the imperial tombs along with tomb-securing texts (zhenmu wen 鎭墓文) and land contracts (maidi quan 買地券). From the excavated articles, it can be inferred that there had been regulations on epitaphs in the Northern Dynasties, even though we can’t find them. With the start of Sui dynasty, the norms of the usage of funeral instruments according to social status became evident. Epitaph may have been free from regulation for it was a rather arbitrary option.
Epitaphs have more historical value than tombstones in that they did not go through secondary processing. However, it is recommended that they’d be analyzed rigorously based on existing historical materials, for they contain a lot of elements of arbitrary exaggerations. We need to analyze them more sternly for they may have outrageous overstatement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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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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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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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69 | 1.69 |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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