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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회의 설립과 확장, 1919~1923 = The Establishment and Expansion of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191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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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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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19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의 대한적십자회의 설립과 조직 확장 활동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가 설립되는 과정, 국제적십자연맹 가입 활동과 간호원 양성 활동, 대한적십자회의 지회 설립 활동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대한적십자회는 1918년 말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의 설립에 참여한 이희경․여운형․김순애 등에 의하여 구상되었다. 그리고 3․1운동 후 일제가 한인을 학살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일본적십자사가 한인구호를 하지 못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직후인 1919년 7월 상순 대한국 적십자사 재건의 형식으로 조직되었다.
대한적십자회의 재건을 주도한 사람은 시카고의대 출신인 이희경이었다. 그리고 신한청년당의 여운형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인 안창호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외에 대한독립애국부인회의 김순애 이화숙 오의순, 세브란스 의학교 출신의 김성겸 김창세, 신한청년당 당원인 이광수 김병조 김철 손정도 안정근 등도 참여하였다.
대한국 적십자사의 재건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대한적십자회는 국제적십자연맹 가입이 어려웠다. 그래서 대한적십자회의 발기인 대표 이희경은 1919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정식 승인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1919년 8월 29일 내무총장 안창호의 내무부령 62호로 승인됨으로써 대한민국 적십자사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었다.
설립 당시 대한민국 대한적십자회 당시 회장은 이희경, 부회장은 김성겸, 이사장은 여운형, 감사는 안정근, 김창세, 김순애였다. 그리고 상의원은 이광수, 옥성빈, 장건상, 손정도, 김태연, 서병호, 정인과, 이화숙, 강태동, 고일청, 김한, 김병조, 김철, 원세훈, 현순, 김보연, 김홍서, 오의선, 이춘숙, 이기룡이었다.
대한적십자회는 스위스 쮜리히대학에 유학하던 이관용을 1920년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적십자연맹 총회에 대표로 파견하였다. 이관용은 일제강점기 벌어진 일본의 한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적십자사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아 항의하고 대한적십자회의 국제적십자연맹 가입을 신청하였다. 그렇지만 국제적십자연맹 총서기장 폴 데 구트는 일본 적십자사의 “한국 적십자사가 1909년 7월 23일 일본 적십자사에 병합되었다”는 변론에 기초하여 대한민국 대한적십자회의 국제적십자연맹 가입을 불허하였다.
한편 대한적십자회는 독립전쟁기에 활용할 간호병을 양성하기 위하여 1919년 1월 31일부터 3개월의 속성 과정으로 간호원양성소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세브란스 의학교 출신인 김창세, 곽병규, 정영준 등의 노력으로 김연실, 김원경, 이경신, 이화숙, 오남희, 김순애, 이봉순, 김현숙, 이매리 등 9명이 졸업하였다. 그러나 간호원양성소의 사업은 1기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대한적십자회는 국문과 중문과 영문으로 된 <선언서>와 <결의문>, 그리고 <청연서> 등을 배포하고, 특파원을 파견하여 국내외에 지회를 설립하였다. 1921년 1월 31일 한국인 1,946명, 중국인 18명, 영국인 9명, 미국인 127명 등 200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상해, 천진, 서울, 니코리스크, 이르쿠츠크, 하와이를 비롯한 국내, 중국, 만주, 연해주, 미주에 지회를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과 황해도 등지에서 벌어진 회원 모집과 지회 설립 활동은 일제 관헌의 검거로 난관에 직면하였다. 게다가 1920년 말 일본의 간도 출병으로 인한 경신...
Topic of this article is the establishment and expansion of the Korean Red Cross established in Shanghai in 1919. Especially, I review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the activities for joining in the League of Red Cross Societies and training nurses, and the activities of establishing branches of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was conceived by Lee Hee-kyung, Yeo Woon-hyung and Kim Soon-ae, who participa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Shinhan Youth Party in Shanghai in late 1918. And after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because the Japanese Red Cross failed to save the Korean people who were injured by Japan's officials, Lee Hee-kyung, Yeo Woon-hyung, Ahn Chang-ho organized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as the reconstruction of the Korean Red Cross of the Empire of Korea in July 1919, right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had difficulty in joining the League of Red Cross Societies. So Lee Hee-kyung, the head of the Korean Red Cross Societies, requested official approval from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to qualify as the Korean Red Cross. on August 15, 1919. Then, on August 29, 1919, it was approved by the Interior Ministry No. 62 At the time of its establishment, chairman is Lee Hee-kyung, vice chairman is Kim Sung-kyeom, chairman of the board is Yeo Woon-hyung. Ahn Jung-geun, Kim Chang-se, Kim Soon-ae, Kwang-soo, Ok Sung-bin, Jang Gun-sang, Son Jung-eun, Kim Tae-yeon, Seo Byung-ho, Jeong In-in, Lee Hwa-sook, Kang Tae-dong, Ko Il-cheong, Kim Han-jo, Kim Byung-chul, Won Sei-hoon, Hyun Soon, Kim Bo-yeon, Oh Eui-sun, Lee Chun-sook, and Lee Ki-ryong were member of a committee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sent Lee Kwan-yong, who was studying at the University of Zurich in Switzerland, to the General Assembly of the League of Red Cross Societies in Geneva, Switzerland in early 1920. Lee criticized the Japanese red Cross Societies that did not fulfill its duties to protect Koreans injured by Japanese officials. And he submitted an application to request Korean Red Cross Societies joining the League of Red Cross Societies. However, Paul de Gutt, general secretary of it refused to join, based on the Japanese Red Cross' argument that the Korean Red Cross was annexed to the Japanese Red Cross on July 23, 1909.
The Korean Red Cross Societies operated a nursing home in a three-month course from January 31, 1919 to train nurses for use of Korean independence war. With the efforts of Kim Chang-se, Kwak Byeong-gyu, and Chung Young-jun, nine students including Kim Yeon-sil, Kim Won-kyung, Lee Kyung-shin, Lee Hwa-sook, Oh Nam-hee, Kim Soon-ae, Lee Bong-soon, Kim Hyun-sook and Lee Ma-ri graduated. But the nursing home project ended with the first term.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distributed the Korean, Chinese and English-language declarations, resolutions, and "Cheongyeonseo," to Koreans and foreigners to advertise it and build local and international branches. On January 31, 1921, it had about 200 members, including 1,946 Koreans, 18 Chinese, nine Britons and 127 Americans. It also had branches in Korea, China, Manchuria, Primorsky and Americas, including Shanghai, Tianjin, Seoul, Nikolisk, Irkutsk, and Hawaii.
However, recruitment and establishment of branches in Seoul and Hwanghae Province faced difficulties due to the arrest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addition, the expansion of its branches was threatened in 1921 due to a new conflict caused by Japan's dispatch of troops to Kando in late 1920 and the divis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forces. Directly after the council of the representatives in Shanghai 1923, the Korean Red Cross Societies came to an end because of the division of the creative and the reformative factions, and being weake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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