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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가의 의리관(義利觀)과 겸애(兼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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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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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묵가의 의리관과 그것을 기초로 한 “겸애”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묵가의 이념적 특성을 고찰한 것이다. 공자와 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에서 의리관이 주요 의제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그것은 대체로 “의”와 “리”를 본말(本末) 혹은 체용(體用) 관계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계승하고 개인의 도덕적 표준으로 설정한 것이 공자를 비롯한 유가의 입장이었다. 물론 유가의 눈높이는 당시의 위정자 혹은 지도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에 비해 묵가에서는 자기 집단의 구성원의 입장을 대변하여 개인보다는 집단과 사회의 공동의 이익 추구를 도모하였다. 따라서 유가에서 “의”를 “리”보다 중시한 데 비해, 묵가는 양자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묵가가 전국시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늘의 뜻”에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수반하여 내부적으로 묵가의 의리관은 “겸애”를 비롯한 묵가의 핵심적인 주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겸상애, 교상리”, 말하자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서로 이롭게 해주는 일이다.” 한편 묵가의 의리관, 나아가 겸애를 비롯한 십대 주장의 이념적 기반이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시 묵가 구성을 비롯한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들의 눈높이에는 쉽게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진한(秦漢) 봉건제국이 성립되면서부터는 오히려 쇠망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봉건제국에서는 개별집단으로의 묵가의 이념과 활동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예컨대 “최고 통치자” 위에 “하늘”(상제)을 설정하는 방식은 정권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결정적 제약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묵가의 “절용”, “절장”, “비악” 등의 주장은 기득권으로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후 청대 서세동점(西勢東漸)에 이르기까지 묵가는 유가와 달리 학파로서의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묵가의 겸애를 비롯한 이념은 유토피아적 구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유가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상호간의 사랑과 배려, 아울러 상호 이익을 공유한다는 이념은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보기In this paper, the ideological features of Mohism were examined through the analysis into the viewpoint of Mohism on justice and benefit and "universal love" based on it. Even before the viewpoint on justice and benefit became a main agenda in Confucianism, Mohism and the Hundred Schools of Thought, there had been discussions on it, and the relation between “justice” and “benefit” was generally understood as that of means and ends(本末) or that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體用). What succeeded to this tendency and set it as an individual's moral standard was the viewpoint of Confucianism including Confucius. Of course, the Confucian view was focused on the politicians or leaders of those times. Compared to which, Mohism represented the stance of their group members and pursued the interest of groups and the society rather than that of individuals. Accordingly, while Confucianism considered “justice" more important than “benefit”, Mohism could understand both of them unificatively. The crucial reason why Mohism could be most active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is that it had its metaphysical basis on “the disposition of Providence.” Accompanying this, the viewpoint of Mohism on justice and benefit was internally reflected in its key arguments including “universal love.” That is so-called “Jianxiangai, Jiaoxiangli”, that is to say, “that loving each other is namely benefiting each other.” On the other hand, the fact that the viewpoint of Mohism on justice and benefit, and furthermore, the ideological foundation of its ten main arguments including universal love was “the disposition of Providence" became a double-edged sword. It was because it could be easily accepted by the laborers, farmers, and craftsmen consisting of Mohism of those times, but it instead became the reason for falling into ruin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feudal empire of Qin and Han(秦漢). In the feudal empire, the ideology and activities of Mohism as an individual group couldn't be embraced. For example, the way to set "Heaven"(the heavenly king) above “the sovereign ruler” might be a decisive limit to the legitimacy and rationality of the regime. Moreover, the arguments by Mohism, such as “Jieyong”, “Jiezang”, “Feiyue” and others couldn't be taken easily by the privileged class. Therefore, Mohism couldn't do any activities as an academic school until Seojedongjeom(西勢東漸) during the Qing dynasty later, and it was different from Confucianism. In brief, ideas of Mohism including universal love ended up as an utopian idea historically, but the conception of sharing mutual interest along with mutual love and consideration with Confucianism from the position of the relatively disadvantaged in the society has a value worthy of being appreciated eve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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