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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조선의 유학담론 = Discourse on Confucianism in Korea under the Japanese Rule
저자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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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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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21-15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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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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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ucianism played as dominant ideology of Chosun even after opening of the ports to Japan. Then Confucianism became not only learning but also a kind of religion. After conclusion of Simonoseki treaty Chosun became independent from Qing. But Chosun stayed as a country still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Confucianism. The new thoughts free from Confucian ideology became possible only after some young scholars studies in Japan, or in America. The social influence of Confucianism was very strong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rule. And for dominant class of Chosun, Confucianism was still a kind of beliefs as well as ideology.
It happen an event in 1931. Li In wrote an article. Criticizing Confucian tradition, he called Confucius as “enemy Confucius” or “rotten Confucius”. It was a parody on Confucius’ name. But almost all Confucian scholars or believers received shock from this parody. And An Seng-Gu accused Li In of a crime which was defamation of Confucius. It was an event but, if we analyse it with viewpoint of micro history, it was an event emanated from long dramatic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We can see from this event impotence of Confucian thoughts which was caught in a trap of fundamentalism or Sino-centrism.
Korean Confucian scholars could not innovate Confucianism. They accepted Japanese rule and they could not play any active role in the national movement. They wanted the revival of Confucianism but this dominant class was but a living fossil of outdated mind.
개항 이후에도 유학은 조선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하였으며 유학을 배경으로 민중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유학은 단지 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있어서 유학은 이미 종교적인 차원에 속하는 것이었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 조선이 청으로부터는 독립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조선이 사상적으로 유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 나아가서 탈유학적인 사고는 일본과 서양에 유학하여 그 문명을 몸소 접하고 나서야 나타나기 시작된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여 정치적으로 지배한다고 할 때에도 유학은 여전히 조선의 사회적 지배층들에게는 이데올로기였을 뿐 아니라 신념이었고 그 지위는 새로운 근대사상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거의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일제시기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유자들에게 유학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학의 희화화를 향해 가는 것이기도 하였다. 유학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양가적 태도를 관찰할 수 있는 1920~30년대 조선은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교가 얼마만큼이나 희화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기가 될 것이다.
1931년의 공자명예훼손 고소사건은 1931년에 일어난 촌극이었다. 그러나 이 촌극을 미시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19세기 이래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유학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대하드라마였다고 할 수가 있다. 사대주의와 근본주의에 발목이 잡혀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된 유학과 그로 인한 국가의 몰락이라는 비극이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그러한 사건이었다.
국가의 몰락을 맞이하면서도 유학은 심각한 자기반성을 하기보다는 그 유학의 고수에 집착하였고 또는 새로운 주인인 일본에 대한 아첨을 통하여 명맥을 유지하는 것을 자구책으로 삼았다. 일부 애국적 유림들의 자기혁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학원을 정점으로 하여 항교로 연결되는 유학적 교학조직 그리고 유림들로 구성되는 각종의 단체들, 종교화된 각종의 유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일제의 식민통치를 변역과 시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며 찬양하고 일본이 건네주는 그 보호에 기대어 국가와 국민을 망각한 상태에서 사회적 지도자의 지위를 누리려고 안주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는 전반적으로 보아 일제시기 조선의 유학이 황도유학의 길을 걸어갔다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공자명예훼손고소사건은 이같은 ‘儒敎復明’의 부류들이 얼마만큼이나 화석화된 의식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얼마만큼이나 아무런 대처 능력 없이 사회적 지도층으로 행세하여왔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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