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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初期 宗親 仕宦의 推移 = Trends of the official career of the royal relativ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저자
김지연 (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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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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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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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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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00(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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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eneral, the patrilineal relative of the royal family is said to be the royal relative. King Taejo received much assistance from the military strength of the royal relative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Joseon Dynasty. The royal relatives performed a central role in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and King Taejo ignored the principle of ‘prohibiting the royal relatives from leading an official life’ that had been handed down from the Koryo Dynasty and allowed them to serve as a government official. But the subject and private soldiers of the royal relatives were the elements that interrupted the reinforcement of the royal power, and King Jeongjong disbanded the private soldiers of the royal relatives and banned them from serving as a government official. But not consistently observed all the way until Keongguktaejon was codified. Some rulers paradoxically allowed their royal relatives to serve as a government official with a view to reinforcing the royal power and administering national states smoothly.
Appointment of royal relative as government officials was reassumed under the reign of King Taejong, who was compelled to appoint the royal relative of the non-Taejo family to suppress the revolt when the Revolt of Cho Sa-euo occurred in the first half of his regime. The appointment of royal relatives as government officials was expanded to the royal relatives of the Taejo family under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royal relatives of the Taejo family were promoted to responsible posts around the military post under the reign of King Sejo. But the official career of royal relatives became burdensome to the forces of vested interests and Empress Jeonghui that exercised the real power after the reign of Sejo. Empress Jeonghui administering state affairs behind the veil at the first half of Seongjong deposed the royal relative who governed the military affairs. Given that Seongjong was enthroned in his young age, his measure taken to check the royal relatives of the patrilineal family can be said to disconnect the forces threatening to the royal power at an early period and enhance the power of seizing a political situation. It can be seen that under the reign of Seongjong, the prohibition of royal relative from leading an office life was codified in Keonguktaejon, which was the result his will rather than Seongjong's will.
일반적으로 왕실의 父系親屬을 宗親이라 말한다. 太祖는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이복형제와 친아들, 사위 등 일가의 군사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조선 건국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태조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宗親不任以事’의 원칙을 무시하고 종친에게 사환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종친의 사환과 사병은 왕권의 강화를 저해하는 요소였고, 이들의 정치적 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정종대 사병을 혁파하고 사환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종친의 사환 금지는 『經國大典』에 법제화될 때까지 일관되게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통치자들은 역설적으로 왕권 강화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하여 종친의 사환을 허용하였다. 종친의 사환은 태종대 趙思義의 亂을 계기로 非太祖系에게 허용되었고, 세종대부터는 太祖系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세조도 태조계 종친을 발탁하여 측근 세력으로 양성하고 훈신을 견제하였다.
하지만 종친의 사환은 세조대를 지나면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세력과 貞熹王后 尹氏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이에 정희왕후 윤씨와 훈신은 종친 견제의 수순을 밟기 시작하여 군사를 관장하는 종친을 개차시켰다. 어린 군주였던 성종을 염두에 둘 때, 정희왕후 윤씨의 이러한 종친 견제는 왕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조기에 차단하고, 자신의 정국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조처였다. 성종대에 종친의 사환 금지가 『經國大典』에 법제화되는 것은, 성종의 의지라기보다는 정희왕후와 원상들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였다.
조선 초기 정치사에 있어 종친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해 그들의 정치적 역할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다. 사환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는 인식 하에 정치 참여의 양상이 온전히 규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왕의 연구와는 달리, 종친은 조선 초기 내내 꾸준히 발탁되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통치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친을 활용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친은 통치자의 정적이 아닌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서 꾸준히 등용되었던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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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2-2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 KCI등재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 KCI등재 |
2015-10-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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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27 | 0.27 | 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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