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麟坪大君의 燕行錄:『燕途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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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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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3-79(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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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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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麟坪大君(1622~1658) 李?가 1656년(효종 7)에 저술한 연행록 『燕途紀行』의 史料的 성격을 검토하고, 여기에 나타난 그의 외교활동을 고찰해 보려는 것이다.
이 연행록은 인평대군이 淸朝에 갔던 12차의 사행 중 제11차 연행의 기록으로서 仁祖~孝宗 연간에 그가 수행하였던 외교 활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明末淸初의 치열한 交戰 記錄과 戰迹地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고, 당시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풍물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정보는 당시의 한중관계사와 중국 사회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인평대군은 17세기 중반 명말청초의 격변기에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조선 외교관[使臣]이었다. 그는 당시 淸의 내부 사정에 정통하였고, 12차례나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므로 朝ㆍ淸 외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효종 대의 민감하고 어려운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그때마다 성공적으로 현안을 처리하였다. 그 중에서도 1647년의 제4차 사행에서 조선이 바칠 歲幣를 반으로 감액한 것, 1650년의 제6차 사행에서 淸에 압송될 위기에 처한 대신들을 求命한 것, 1656년의 제11차 사행에서 反淸 운동에 연루되었던 이시백 등 16명의 조관들을 사면받게 한 것과 1657년의 제12차 사행에서 조선의 火藥 만든 일을 잘 무마한 일은 큰 외교적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인평대군의 외교적 업적은 그 자신의 특별한 외교적 수완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기보다는, 王子이며 王弟였던 그의 독특한 신분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잦은 사신 파견은 일종의 人質과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외교적ㆍ의전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당시 淸朝는 皇族들이 정치ㆍ군사의 실권을 담당하였고 외국의 왕족들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王子가 아니면 수행하기 어려운 외교 현안들이 많았다. 당시 조선에서는 그와 世子 외에는 다른 왕자들이 없었으므로 인평대군이 혼자서 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인평대군은 모두 12차의 사행을 통해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였으며, 그것을 훌륭한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燕途紀行』에 수록된 독특한 내용들은 당시의 한중 외교사 연구는 물론 “연행”을 매개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한중간의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This is a study of the Yeondo-gihaeng (燕途紀行), a diary recording a journey from Seoul to Peking in 1656, which was written by Prince Inpyeong (麟坪大君) (1622~1658), whose original name was Lee Yo(李?). Prince Inpyeong was a son of King Injo (仁祖) and a brother of King Hyojong (孝宗), who performed many important diplomatic roles between Choseon Korea and Qing China in the mid-Seventeenth Century.
The diary is the record of his 11th journey to China as a royal ambassador, only one which was written by members of the royal family, and is very unique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Choseon dynasty. This book not only examines the processes and events of the great war between Ming and Qing dynasties in the Seventeenth Century, but also provides other important information on political, military, diplomatic, and social aspects of the northern China at that time. As such, the Yeondo-gihaeng is an excellent material resource for the study of the relational history between Korea and China, and the social history of Qing China.
Prince Inpyeong was a diplomatic expert, who was sent to China as a royal ambassador 12 times during his life. As he had lived in Shenyang for two years as a hostage, and afterward visited China frequently, he became well experienced in Chinese affairs and in the diplomatic affairs between the two countries, which later allowed him to perform his job as ambassador very efficiently. Some of his distinguished achievements as the royal ambassador were; negotiations to halve the Korean annual offerings to Qing in 1647; saving the lives of Korean ministers who might be put to death in 1650; the pardon of the 16 suspected Korean ministers by the Qing government in 1656 (which is described well in the diary); and the gentle management of problems associated with Korean rearmament against Qing in 1657.
Prince Inpyeong's diplomatic success could be mostly attributed to his position as a prince, which was esteemed highly in the Qing Imperial court. Royal diplomacy was very important in the early Qing dynasty because the country was ruled by members of the Manchurian royal family. Due to his social position therefore, he was warmly welcomed and entertained by them, which proved advantageous in the performance his diplomatic duties. Being the only prince apart from the crown prince, he was obligated to carry out the long and demanding duty of the royal ambassador to China at that time.
Prince Inpyeong performed his role as royal ambassador effectively to solve many diplomatic problem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left an imformative historical document, the Yeondo-gihaeng, which can be used to study the relational and cultural history of Korea and China in the Seven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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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1 | 1.11 |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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