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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선천지역 3 · 1운동의 전개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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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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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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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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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2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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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평안북도 선천지역의 3·1운동을 살펴본 것이다. 선천은 3·1운동의 계획단계부터 운동이 준비된 지역이었고, 실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운동이 시작된 곳이었으나 지금까지 개별연구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선천군은 교통의 요지였고, 그로 인해 대한제국기 이래 일제의 극심한 침탈에 시달려야 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선천지역 주민들은 일찍이 국권회복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실제 국채보상운동과 교육구국운동 같은 여러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선천지역은 ‘기독교의 왕국’이란 호칭이 있을 정도로 기독교 교세가 막강한 곳이었고, 기독교보다는 비교적 덜하지만 천도교세 역시 상당했다. 특히 기독교는 양전백 및 신성학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선천지역 3·1운동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으며, 실제 기독교도들은 「선언서」의 전파 및 확산, 운동의 계획과 전개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선천의 3·1운동은 3월 1일부터 3월 8일까지 연인원 1만 명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운동이 대단히 빨리 확산되었으며, 운동의 주도층은 신성학교의 교사와 학생으로 10~20대였다. 이는 일제에 대한 침탈로 인해 지역민의 독립의식이 고조된 가운데 기독교와 천도교 같은 종교조직이 이들을 조직해낸 결과였다.
하지만 선천지역의 3·1운동은 대단히 빨리 약화되었다. 실질적인 만세운동은 3월 8일을 기점으로 사실상 종료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탄압으로 운동을 주도하던 기독교와 천도교계 조직이 큰 타격을 받고, 일제의 봉쇄로 운동이 불가능하게 된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 연구가 미진했던 한강 이북의 3·1운동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지방법원 및 복심법원 판결문이 발굴된다면 선천지역 3·1운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that took place in the Seoncheon region of Pyeonganbukdo Province in Korea. The region was included from the early planning stage of the movement, and there the first movement took place. However, research has not been properly conducted on the region.
The Seoncheon-gun was a transportation hub at the time, and as such, suffered from severe exploitation of the Japanese force ever since the era of Korean Empire. Against this background, people of the Seoncheon region took interest in efforts to restore national rights, leading to a movement to repay national debts and save the nation with education.
Meanwhile,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was exceptionally strong in the Seoncheon region as to being called ‘Kingdom of Christianity.’ The influence of Cheondogyo was also strong, although not as much as Christianity. Christianity in the region was closely tied to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s manifested by activities of minister Yang Jeonbaek and Shinseong School; in fact, Christians played a pivotal role in preaching and spreading the ‘Statement’ as well as in planning and deploying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Seoncheon region grew fast as more than 10,000 people took part in between March first through eighth, led by teachers and students of Shinseong School who were in their teens and 20s. This was an outcome of organizing religious entities for Christianity and Cheondogyo, amid heightened yearning for national independence among local residents.
Howev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Seoncheon region dissipated equally quickly. The actual protest is deemed to have ended on March 8, as Christian and Cheondogyo organizations were hit hard by severe watch and oppression by the Japanese force, and their blockade efforts made further gatherings impossible.
This study has historical significance for investigating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north of the Han River, which has been neglected before. However, there are limitations as well.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Seoncheon region may be investigated further if related court rulings by regional courts and courts of review can be found.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9 | 0.59 | 0.6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4 | 0.62 | 1.442 | 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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