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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각의 언론활동과 하와이 한인사회의 현실 인식 -The Young Korea와 The American Korean을 중심으로- = The Media Activities of Young-Gak Kang and the perception of the realities of the Korean-American Society in Hawaii -Focusing on The Young Korea and The American Korean-
저자
이현희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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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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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5-5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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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immigrating to Hawaii, Young-gak Kang, who received American education at Pomona University, led the enlightenment of the Hawaiian youth society through media activities from the 1920s to the 1940s. He established his own organizational press institutes, The Young Korea and The American Korean and delivered various voices about the Korean-American community in Hawaii. However, his media activities were limited by the lack of a financial foundation, so he was forced to suffer several times. In addition, due to the inherent limitations of self-centered organizational management, there were also conflicts with other Korean youth societies. Nevertheless, his media activities continued endlessly, and through various articles appearing through his media, various perspectives of Korean-American society can be examined.
His press emphasized the integration of Korean American society, based on enlightening discourses. However, in the mid-1920s, conflicts surrounding Americanism also emerged. In a moderate Korean society, while respecting the traditions and cultures of Korean society, they sought to combine with Western civilization, but the active acceptance of Western civilization emphasized the coexistence of multi-ethnic groups instead of Korean-centered national self-determination. And they recognized Christanity and Materialism as important values.
Lastly, The Young Korea and The American Korean of Young-gak Kang show the appearance of the Korean-American community who were seeking for the korean independence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At that time, these media sporadically discussed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rticles on the disarmament at the Washington Conference and the criticism of Japanese rule over Korean rule through the American church show this tendency. In addition, the Victory Day of World War I also served as a mechanism to remind the Korean-American community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and the March First Movement. Furthermore, through the March 1 commemoration ceremony,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was not merely a declaration of independence by Koreans.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Korea in March, was regarded to have an universal values of humanity in the sense of non-violent resistance, so this declaration was campared as an equivalent document to the U.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s such, the March 1st Movement became the prototype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basis of their activities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하와이로 이민 온 이후 미국식 교육을 받은 강영각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주로 언론활동을 통해 하와이 청년사회의 계몽을 이끌었다. 그는 The Young Korea와 The American Korean을 통해 자신의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당시의 하와이 한인사회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그의 언론활동은 재정적 기반의 부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수차례 정간을 겪을 수 밖 에 없었다. 또한 본인 중심의 조직 운영이라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다른 한인청년사회와 갈등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론활동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이러한 그의 언론을 통해 나타난 여러 기사를 통해 한인 사회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언론은 기본적으로는 계몽적인 논설을 바탕으로, 한인사회의 통합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주의를 둘러싼 갈등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중도적인 한인사회에서는 한인사회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가운데 서구문명과의 결합을 추구하였지만, 적극적인 서구문명 수용세력에서는 한인 위주의 민족자결주의를 대신하여 다민족간의 공존을 강조하였고, 기독교 정신과 물질문명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였다.
마지막으로 강영각의 The Young Korea와 The American Korean에서는 3‧1운동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독립을 위한 모색을 하던 당시의 한인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이들 언론에서는 산발적으로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워싱턴회의에서의 군축과 미국교회를 통한 일제의 한국지배 비판에 관한 기사 등이 이를 보여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역시 하와이 한인사회에 있어 민족자결주의와 이에 따른 3‧1운동을 떠오르게 하는 기제가 되었다. 나아가 이들은 3‧1절 기념식을 통해 3‧1운동이 단순히 한인들의 독립선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저항이라는 의미에서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가진 3‧1독립 선언서는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동등한 문서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3.1운동은 미주 한인사회에 있어 한국독립운동의 원형이자 자신들의 활동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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