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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acts of the “Berliner Mauerfall” and the Unification of Germany for the Tasks of Korean Un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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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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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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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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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609(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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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8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많은 동독인들이 동독을 탈출하여 서독으로 넘어갔다. 동독에서는 혁명이 이루어지고 동독체제가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흡수됨으로써 독일통일이 달성되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붕괴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영상 전파를 타고 한국인들에게 전해였다. 본 논문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분단국인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았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은 한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평화적으로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되는 과정은 놀라운 현실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견지하던 ‘감상적’ 차원의 통일희구를 넘어서서 통일과정의 현실적인 고통을 또한 인식해야 했다. 대량 실업문제와 엄청난 통일비용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동요가 그것이었다. 세계적 강국이고 민주주의 선진국인 서독이 동독을 흡수했을 때 저 정도인데 남한이 과연 붕괴되는 북한을 무탈하게 흡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깊게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독일의 이 사건들은 남한 사람들에게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하는 실제의 상을 심어 주었다.독일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들이 남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양국 모두 분단된 경험을 공유하고 서독과 남한이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온 관계 양상에 기초하여 결정되었다.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후속으로 일어난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독일통일로 이어졌다. 독일통일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건들은 남한의 반공의식을 완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반공의식의 약화는 1987년 이후의 민주화를 더욱 심화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통일운동을 확산시켰다. 1988년부터 추진된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서독의 동방정책을 모델로 한 북방정책은 북한과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고 소련과 중국 그리고 동유럽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표방했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북방정책이 큰 성과를 거둔 데는 부분적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 몰락,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 통일 이후 체제의 위협을 느낀 북한이 남한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킨 데서 그 큰 원인이 있었다. 위의 사건들 이후 북한은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분단된 현실 유지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였다. 북한은 체제 안정을 꾀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미국과 일본과 수교를 맺기 위해 남북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남한의 대북정책 역사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북방정책을 실시하면서 시민들의 교류와 협력의 길을 차단하고 대북 대화 통로를 독점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의 통일정책은 명백하게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많은 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이 유사성은 오랜 동안 통일정책 개발에 헌신해 온 김대중의 통일정책 제안들이 북방정책에 수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방정책의 성과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같은 합의 내용들을 적극 계승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장하고 민주주의 신장을 통일정책 실현의 주춧돌로 본 점에서 그리고 흡수통일 반대를 명확히 천명함으로써 노태우 정부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통일 과정에서 서독 동방정책의 적실성을 확인하였으며 북한이 동독의 몰락과 흡수통일 방식에 대해 갖는 공포감을 냉철하게 인식하였다.
The fall of the Berlin Wall, the ensuing collapse of the eastern block in 1989-91, and the unification of Germany in October 1990 all had a significant impact on North and South Korea, albeit in different ways. For South Koreans the event of the fall of the Berlin Wall symbolized also the collapse of apparently real-existing socialism. Over the longterm view it symbolized positively the unification of Germany too. These world historical – not only European – changes made Koreans on either side of the divided peninsula very conscious of the challenging task of attempting the unification of their divided country. In the South impact of the fall of the Berlin Wall and German unification was to help the success of the North Korean policy of the Roh Tae-woo government. However, Roh aimed to monopolize the unification policy for the benefit of his own regime. He either excluded or controlled the citizens’ unification movement. In practice his policy was not realized in true exchanges and cooperation between the South and the North, even though his “Northern Policy” had the West German Ostpolitik as its reference. But Roh’s Northern Policy aimed to put pressure on North Korea through the improvement of relations with the Soviet Union, China, and other eastern block countries. For the most part Kim Dae-jung inherited the Northern Policy of Roh. However, Kim emphasized civil participation in the unification movement and the need to try to engage the North in constructive dialogue. He stressed that the two Koreas must avoid any rapid moves towards unification absorbed, as he was, with the differences between German and Korean situ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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