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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병풍차(屛風次)의 제작과 유통 = From Works of High Art to Consumption Goods: The Production and Circulation of Folding Screens in Nineteenth to Early Twentieth-Centur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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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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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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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0-71(32쪽)
KCI 피인용횟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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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20세기에 급증한 병풍 수요에 대응하기 위하여 새롭게 등장한 병풍의 제작과 유통 방식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중에서도 초본(草本)을 활용한 병풍차(屛風次)의 제작 과정과 상업적 유통에 주안점을 두었다. 병풍차란 목재 틀로 병풍의 장황을 마감하기 이전 상태인 비단과 종이로 된 ‘병풍 거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병풍차’는 감상의 대상인 병풍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병풍을 물질적으로 취급하는 맥락에서 나온 용어이다.
병풍차의 초본은 범본(範本), 견본(見本), 교본(敎本)으로 활용되었다. 전체 초본은 주로 연폭 병풍에 활용되었다. 이는 주로 도안이 복잡하여 범본의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작례로는 곽분양행락도, 요지연도, 십장생도, 왕회도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의 화원화가들은 비단 궁중뿐 아니라 상업적 수요를 위해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동일 범본이 사용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궁중 회화와 민간 회화 사이에는 화품(畵品)이 다를 뿐 동일한 도안을 보이는 작례가 많다. 부분 초본은 기물의 배치를 바꾸어 가며 활용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작례로는 책거리도를 들 수 있다. 특정 가문 혹은 특정 공방은 초본 독점을 통하여 책거리 화목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견본을 조합하는 방식은 주로 각 폭 병풍에 활용되었다. 견본은 화가의 레퍼토리를 고객에게 보일 수 있는 방편이 되었으며 아울러 사제가 함께 운영하는 공방에서는 교본 역할도 겸하였다.
병풍의 수요 증가는 판매 경로의 다각화를 가져왔다. 이전 시대에 거간에 의해 거래되었던 병풍은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였다. 예를 들어 서점, 혼례용품 판매점, 가구 상회에서 병풍을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가격대도 고급 병풍과 저급 병풍의 차이가 100배 이상 났기 때문에 모든 계층이 형편에 맞는 물건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울러 화가가 우편을 통해 병풍차를 배달하고 우편환으로 대금을 받는 방식도 등장하였다. 이는 고객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병풍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재로 바꾸는 데에 기여하였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how painters attempted to meet the increasing demand of folding screens from the nineteenth to early twentieth century. Painters in the late Joseon period developed new strategies in the production and circulation of folding screens for the growing demand. When it comes to the production, the discussion is focused on three types of preparatory drawings (Ko. chobon) which served as models and samples: The first type was the complete preparatory drawing. It was mainly used for hinge-connected panel screens which required complicated designs such as “Ten Symbols of Longevity,” “Tribute Mission at the Chinese Court,” “General Guo Ziyi’s Banquet,” and “the Banquet at the Abode of Xiwangmu, the Queen Mother of the West.” In Joseon society, since court painters produced their works not only for their official duties but also for their commercial profits, they shared the same model drawings for both court and commercial uses. In this case, the sketch itself would be the same even though final products’ quality or the level of workmanship shows discrepancies depending on the costs. The second type was the partial preparatory drawing. It was mostly applied to complex motifs and could be used in association with other drawings for diverse visual effects. Chaekgeori painting was the best example to demonstrate how a certain group of painters from a lineage or workshop monopolized a certain genre of paintings by making use of the preparatory drawings. The third was a combination of complete and partial drawings. This combination made it easy for painters to create isolated panel screens. If customers chose particular subjects among sample panels for their preference, painters could assemble them into one set of screens by using these combination drawings.
As for the marketing channels, modern inventions such as public transportation, postal service, and offset printing press expedited the circulation of folding screens. Thanks to these inventions, folding screens came to be circulated not only by art galleries located near Gwangtonggyo but also by bookstores, wedding utensil stores, and furniture shops all around Seoul. The variety of the price of the final products also provided people easy access to folding screens depending on their budgets. Some painters used the mail service to deliver their work to remote customers and received its payment via the postal money-order service. These new environment of transaction brought enormous changes to the status of folding screens, which were no longer works of high art relished only by the upper classes, but items of customer goods for ordinary peopl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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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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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7 | 0.37 | 0.4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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