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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侃 論語義疏의 유입과 18-19세기 조선 학계의 반응 = A Study on the Influence of Huang Kan(皇侃)’s Lunyuyishu(論語義疏) on the Late Chosŏn Dynasty
저자
오보라 (고려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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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47-28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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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influence of Huang Kan(皇侃)’s Lunyu yishu(論語義疏) on the late Chosŏn Dynasty. Lunyu yishu disappeared since Nan Song(南宋) Dynasty in China. In China, the Lunyu xhushu(論語注疏) was widely read instead of Lunyu yishu. However, the Lunyu yishu, that had been believed to disappear, was found in Japan. A manuscript of Lunyu yishu remained in Japan. The Japanese scholar, Nemoto bui(根本武夷) published the manuscript of Lunyu yishu in the mid-eighteenth century. Then, the published Lunyu yishu was impo rted into China from Japan.
This book was also imported into Korea. But it is not clear how Lunyu yishu was imported into Korea. There are two assumptions on the distribution channel of Lunyu yishu. First, the Lunyu yishu might deliver to Korean by the Korean embassies of 18th century. Second, the Lunyu yishu that was republished in China might be imported into Korea. There are many evidences that support these assumptions. Therefore, the Lunyu yishu was read in the late Chosŏn Dynasty by some scholars such as Kim Jung-hee(金正喜), Shin Jak(申綽), Seong Hae-eung(成海應), Hong Suk-ju(洪奭周), Jung Yak-yong(丁若鏞) and so on.
After the Lunyu yishu was imported into Korean, the Korean scholars discussed on the authenticity of the Lunyu yishu. For example, Seong Hae-eung insisted that Lunyu yishu was faked by the Japanese. On the other hand, Hong Suk-ju said that he also doubted about the authenticity of the Lunyu yishu, but there was no evidence to substantiate for fake. So he thought that the Lunyu yishu was real.
The Lunyu yishu had great effects on the China and Japan, but it didn’t so in the Chosŏn Dynasty. In the Chosŏn Dynasty, Cheng-Zhu school had an authority. So the Lunyu yishu, that included annotations against Cheng-Zhu school had, didn’t have a great influence on the late Chosŏn Dynasty.
본고는 皇侃(488-545)의 『論語義疏』가 조선에 유입된 과정 및 그것을 둘러싼 논의를 살핌으로써, 18-19세기 학술사의 단면을 고찰해 보았다. 황간의 『논어의소』는 중국에서 南宋 대에 이르러 散逸되었고, 그 대신에 중국에서는 何晏의 注에 邢昺의 疏가 달린 『論語義疏』가 널리 읽혔다. 그런데 중국에서 없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던 황간의 『논어의소』가 淸 대에 이르러 돌연 등장하였다. 일본에 남아 있었던 舊鈔本 『논어의소』가 根本武夷(네모토 부이)에 의해서 간행되었는데, 이것이 중국에 역수입된 것이다. 이후에 『논어의소』는 중국에서 다시 간행되었는데, 그 간본으로는 사고전서본, 무영전본, 지부족재총서본의 3종이 있다. 이 책은 조선에도 유입되었으며, 京畿 學人들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
황간의『논어의소』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읽혔던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정확이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이에 『논어의소』의 유입 경로를 두 가지로 가정하고, 각각의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두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 본 결과, 조선에 유입된『논어의소』는 중국에서 간행된 지부족재총서본일 가능성이 크다. 당대 조선 학계는 상대적으로 일본의 학술보다는 청나라의 학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일본 원간본이 아니라 중국 간행본『논어의소』가 조선에 유입된 데에는, 이러한 조선 학계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조선에 『논어의소』가 유입된 이후, 조선 학계에서 나타난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본에서 나온『논어의소』라는 책이 과연 眞書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논의의 중심에 있었던 이는 성해응과 홍석주였다. 성해응의 경우 문헌·자구의 고증을 통해 『사고전서총목』의 해제를 반박하고 『논어의소』를 위서로 단정했다. 이와 달리 홍석주의 경우는 문맥의 정합성에 근거하여 『논어의소』를 진서라 판단했다. 홍석주와 성해응 모두 고증학의 방법론을 채택하기는 하였으나, 『논어의소』의 진위에 대해서는 상이한 결론을 내렸다. 즉 『논어의소』를 둘러싼 논의를 통해, 두 사람의 학문 경향의 차이점을 엿볼 수 있었다.
둘째, 조선 지식인들이 실제 경학 연구에서 황간의 설을 얼마만큼 활용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논어의소』는 일본의 경우 고학파들의 경전 해석에 큰 영향을 끼쳤고, 청나라의 경우 고증학자들의 字句 고증에 적극 활용되었다. 하지만 『논어의소』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그 영향이 크지 못했다. 이는 조선 학계의 분위기가 중국·일본과 달랐음을 부각시켜 준다. 즉 조선의 학계가 중국·일본과 대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중·일 양국에서 큰 화제였던 서적이 조선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조선은 당대 청나라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주학에 많이 경도되어 있었다. 따라서 老莊의 색채가 짙은 『논어의소』는 수용보다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古注를 활용하여 경전을 고증하려는 학자들에게 『논어의소』가 이용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경우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학계는 청나라 고증학의 방법을 수용하기는 하였으나, 청나라 고증학의 지나친 자구 천착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때문에 청나라와 달리, 조선에서는 『논어의소』가 부분적으로 활용되는 ...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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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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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2 | 0.52 | 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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