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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교회 재건 운동과 교구장들의 선교 정책 : 1886~1906 = The Restoration of Catholic Church in Korea and the Mission Policies in the Period of Opening Her Ports to Foreign Vessels
저자
장동하 (가톨릭대학교·한국 근·현대사)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114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7-115(29쪽)
제공처
병인박해 후 교회의 재건은 선교사들의 입국에 관여한 신자들의 건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신자들에 의해 교회 재건의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공소를 재건하는 것과 회장 제도를 복원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개항기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신자들을 방문하여 새로운 공소회장을 임명하고, 및 공소들의 복원과 새 공소를 일으켜 나갔다. 이처럼 187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교회 재건 운동은 성직자 영입 운동에 이어 회장 제도의 복원과 전국적인 공소 재건 정책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선교정책의 방법은 개항기 내내 교회의 주요한 정책의 하나로 정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랑 주교의 선교 정책은 그가 주교로 성품되기 이전부터 회장 제도의 복원과 공소 재건을 통해 무너진 교회 조직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리델 주교의 체포와 추방이 있던 1878년부터는 동료들과 함께 전국적인 지방의 공소를 부흥하는 정책의 시행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1882년경에는 상당한 부분의 전국적인 공소 재건을 확립하여 병인박해 전과 비슷한 정도의 교회 조직을 재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방 교회 조직이 재건되고 정부의 개방 정책이 확대되자, 선교사들은 수도에 선교 본부를 정착시키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1884년 블랑 주교가 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개최한 제3차 교구 시노드를 통해 한국에서의 선교 정책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마련하였다. 특히 시노드를 통해 종교 자유가 확보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선교사들마다 제각각 처리하던 교회의 규칙들을 통일하여 선교 활동의 일관성과 체계화를 이루었다. 마침내 1886년 한불조약이 체결되자 공소회장 제도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순회회장 학교를 세우고 제도화하여 교세 확장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신자 조직의 기초인 공소를 일으키고, 신앙의 내실화를 기하기 위하여 회장 제도를 복원하고, 시노드의 개최와 순회전교회장 제도를 확립하는 것에 선교 정책의 근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뮈텔 주교의 선교 정책은 선임 교구장인 블랑 주교가 추진한 계획들을 마무리하고 교회의 안정화를 추구하면서 교세 확장으로 이어지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주교는 신자 보호 정책을 중심으로 지방의 본당 증설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두 정책을 근간으로 개항기 한국 사회에 천주교회를 확고히 정착시켜 나갔다. 그러나 그가 취한 선교 정책은 지나치게 신자와 선교사들을 보호하는 가운데 많은 갈등과 분쟁들을 양산해 냈다. 신자와 주민 사이의 아주 사소한 갈등조차도 신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선교사들이 노골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각종 사회 문제를 불러왔다. 또한 프랑스공사관에 개입을 요구하여 사건은 교회에 유리하게 끝났으나, 신자와 주민 사이에 분쟁이나 사건이 발생하였던 지역은 오히려 더 깊은 갈등을 가져왔다. 뮈텔 주교의 선교 정책은 신자 보호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본당증설과 교세 확장을 가져왔으며 교회 조직의 안정화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주교가 취한 개항기 선교 정책은 신자의 증가와 전국적인 본당의 증설과 정착이 이루어진 반면, 교민 갈등과 분쟁을 더욱 가속화하여 개항기 수많은 사회 문제를 양산하였으며 수많은 교안(敎案)의 발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The important mission policies for the restoration of Korean Catholic Church in the port-opening period of Chosun Dynasty, the last kingdom of ancient Korea, were to bring French missionaries into the Korean peninsula, to reconstruct Kongso(公所; lit. public place), a Catholic worship place in which a priest does not reside, and to train Catechiste(公所會長; F. the chief of Kongso), who leads the members of Kongso.
Fr. Blanc, the Co-adjutor of Bishop Ridel, tried to restore Korean Catholic Church, which was then devastated by several serous persecutions, by reconstructing Kongsos and training Catechistes. Due to his strong supports, by 1882, the system of Korean Catholic Church was restored to the condition of pre-Byungyin religious persecution(N ), which began in 1866. Meanwhile, the bishop Blanc opened the third Synod of Korean Catholic Church right after he succeeded Ridel in 1884 and became the seventh Vicar of Korea. During the Synod session, Blanc improved various religious laws and regulations and organized all of the missionary actions systematically. After the Korea-France Treaty in 1886, he also established the school for ambulant Catechistes, or itinerant Catechistes, who went on circuit to teach catechism. As a result, Korean Catholic Church gradually expanded their influence all over the country.
Bishop Mutel promoted the policies of his predecessor, Bishop Blanc, in order to secure the power of Church. Especially, he made great efforts to increase the number of parishes in all parts of the country. In the process of this, however, many conflicts occurred between Catholics and non-Catholics. Mutel, as well as French missionaries, immediately intervened the conflicts and ultimately moved to find a solution in favor of Catholics. As a result of their excessive protection for Catholics, in many cases, those conflicts became Kyoan(敎案; lit. matter of Church), an incident of physical violence on non-Catholics by Catholics. Things became worse and complicated when Mr. Frandin, a French legation in Korea, involved himself in these religious matters on the request of French missionaries and tried to solve them diplomatically on the ground of the Korea-France Treaty. Bishop Mutel's mission policies resulted in two different outcomes: one is positive, the other is negative. His policies secured the influence of Korean Catholic Church on the one hand, but they aggrav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Catholics and non-Catholics and finally caused numerous Koyans on the othe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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