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개항기 울도군수의 행적 = The Footprint of Uldo(Ulleungdo) District Mayor during the Door Opening Era of Choseon
저자
김호동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50(44쪽)
KCI 피인용횟수
4
제공처
소장기관
Many of papers or books dealing Ulleungdo or Dokdo describe the history of Ulleungdo exploration positively considering Dokdo territory right, and also evaluated activity of the mayor officers Bae Gae-ju the first major and 4th mayor Sim Heung-taek. However, author evaluate the ‘history of the opening era’ as ‘failed history’. So that King Gojong, King Sunjong, Daewon-gun, and queen Minbi(Empress Myeongseong) should be negatively praised also and officers of Daehan empire or district mayor of Uldo should be negatively valued as well.
Activity of Uldo district majors during the opening era showed a limited action. First, the 1st major of Uldo district Bae Gae-ju· the 2nd Kang Young-woo· the 3rd Bae Gae-ju· the 4th Goo Yeon-soo· the 5th Sim Heung-taek· the 6th Sim Neung-ik· the 7th Jeon Tae-heung did not visited Dokdo reviewed in historic record. In March 28, 1905 officer of Shimane-Ken visited Uldo district office house in Dodong and met mayor Sim Heung-taek and saying “Now on, Dokdo became Japanese territory and I visited this island for the inspection”, which should have followed visiting territory Dokdo island by the mayor. But Sim Heung-taek major of Uldo district did not visited Dokdo in historical material. Moreover, Mayor Sim Heung-taek just watched Japanese activity of constructing two watch towers on Ulleungdo and connection of telecommunication sea bed cable between Jukbyeon and Ulleungdo. Sim Heung-taek major of Uldo district did not reported this matter to the central higher office. Also, he did not reported the arrival of Niitaka Maru(新高號) on Ulleungdo.
Second, former mayor of Uldo district and new major of Uldo district could not transfer the duty directly. The 1st mayor Bae Gae-ju escaped to mainland with Choi Byung-lin on Cahngryong-ho ship. The 2nd major of Uldo district Kang Young-woo arrived at Ulleungdo on December 30, 1901 and could not transfer any documents. The 3rd mayor Bae Gae-ju was appointed in March 7, 1902 as Uldo district mayor but he could not seat until September 15, 1902. The 2nd mayor and the 3rd mayor could not transfer their duty directly. There was long suit concerning Bae Gae-ju until January 5, 1903 and naturally the 4th mayor Sim Heung-tack was appointed accordingly on December 28, 1902. Also Bae Gae-ju and Sim Heung-taek could not transfer the duty directly. Gu Yeon-soo was appointed as 5th mayor on June 26, 1907 but reappointed as head of police officer in July 21, 1907 in only 25 days after the mayor appointment and he did not seated as district mayor in reality. He was appointed as Uldo mayor on August 1907 but Sim Heung-taek was appointed as governor of Hwengseong district that Sim Neung-ik could not receive normal office duty transfer. Real office work was nearly impossible for the mayors because of abnormal appointment and seating to receive full information about Ulleungdo.
History of door opening era in Korea was history of failure. Uldo district mayor was impossible to grasp the reality and incapable for the office work. So there is an issue for the Japanese until to insist their Dokdo territory right.
key words: Door opening era, major of Uldo district, Bae Gae-ju, Kang Young-woo, Goo Yeon-soo, Sim Heung-taek, Sim Neung-ik, Jeon Tae-heung
울릉도, 독도를 다루는 책이나 논문의 경우 독도영유권을 고려해서 울릉도의 개척사를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초대 군수 배계주와 4대 군수 심흥택의 경우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본 필자는 ‘개항기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과 순종, 대원군과 민비(명성황후)를 부정적으로 보고, 대한제국의 조정 관리들과 울도 군수롤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개항기의 경우 울도군수의 행적은 한계성이 많았다. 첫째, 울도군수 제1대 배계주·제2대 강영우·제3대 배계주·제4대 구연수·제5대 심흥택·제6대 심능익·제7대 전태흥은 사료상으로 보건대 독도에 가지 않았다. 1905년 3월 28일 시마네현 관리가 도동에 있는 군청을 방문하여 심흥택 군수를 만나면서 “독도가 이번에 일본의 영지가 되었기에 시찰차 나온 것이다”라고 하여 반드시 관할구역인 독도에 가야 한다. 그러나 자료상 심흥택 울도군수의 경우 독도에 간 일이 없다. 또 심흥택은 일본에 의해 울릉도 2개의 망루를 설치하고 죽변과 울릉도 사이에 해저전선을 부설하여 연결하였다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심흥택 울도군수는 자료상 중앙정부에 보고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新高號도 울릉도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중앙정부에 보고하지 못하였다.
둘째, 전 울도군수와 신임 울도군수의 직접 업무 인계를 하지 못하였다. 1대 군수 배계주는 최병린이 창룡호에 편승하여 본토로 편승하여 도주하였다. 제2대 울도군수 姜泳禹가 1901년 12월 30일에 울릉도에 도착하였다보니 직접 인수인계가 안 되었다. 제3대 군수 배계주는 1901년 3월 7일에 울도군수로 임용되었지만 1902년 9월 15일까지 울도군에 부임하지 못하였다. 제2대 강영우 울도군수와 제3대 배계주 울도군수는 직접 업무 인계를 하지 못하였다. 배계주와 관련된 소송이 1903년 1월 5일까지 지속되었다보니 1902년 12월 28일에 제4대 울도군수 심흥택이 임명되었다. 배계주와 심흥택이 직접 업무 인계를 하지 못하였다. 구연수는 1907년 6월 26일자로 5대 울도군수에 임명되었고, 25일 만에 7월 21일자로 警務使에 임명되었다보니 25일 만에 경무사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실제 도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능익은 1907년 8월 울도군수에 임명되었는데, 전 군수였던 심흥택이 3월 횡성군수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직접 업무 인계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군수와 신임 군수와 직접 업무 인수를 안받았다보니 울릉도에 파악하는 것이 늦다.
개항기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이다. 대한제국에 임명한 울도군수는 울릉도 업무에 몰랐고, 무능하였다. 그 이유 때문에 현재의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
분석정보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 201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 2007-10-18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독도 · 평화연구소 -> 독도연구소영문명 : Dokdo and Peace Research Institute -> Dokdo Research Institute | |
| 2007-08-24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독도연구소 -> 독도 · 평화연구소영문명 : Dokdo Research Institute -> Dokdo and Peace Research Institute |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38 | 0.38 | 0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 | 0 | 0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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