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漢城百濟의 對外交流와 佛敎 = Foreign exchange and Buddhism in the Hanseong Baekje
저자
길기태 (국가기록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7-89(23쪽)
KCI 피인용횟수
6
제공처
King Geunchogo of Baekje did not introduce Buddhism while establishing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East Chin(東晋) as Taoism and Confucianism settled down as central ideology around that time. It can be inferred from Go Heung's publication of Seogi(書記) and the yellow military flags during a fever outbreak below Hansu.
During the reign of King Chimryu, Baekje introduced Buddhism due to political issues among the ruling class. The royal power, which started to weaken at the end of the reign of King Geungusu, searched for a new ideology and found an alternative in Buddhism, which penetrated Baekje by that time. It is well indicated in the fact that King Chimryu was hasty in building Buddhist temples and designated ten Buddhist priests who have attained a spiritual enlightenment(度僧) as soon as he introduced Buddhism. He intended to solidify his royal power through Buddhism. It is well supported by the emphasis of Marananta’s amazing thing and abnormality(神異性).
However, Buddhism accepted by Baekje’s royal court was not settled down in Baekje society. Coming to the crown after King Jinsa, King Ashin tried to spread Buddhism, which well reflected the social atmosphere of the times. However, his attempts to spread Buddhism failed as he was defeated over and over again by Goguryeo.
Buddhism during the reign of King Gaero can be explained through Dorim, who moved to Baekje as a Goguryeo Buddhist priest. In particular, a diplomatic document containing “Receiving enlightenment that will continue to be divine generation after generation” to Northern Wei(北魏) on the 18th year of King Gaero’s rule demonstrates the possibility that Baekje’s Buddhism was not limited to southern dynasties those days.
근초고왕은 동진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진문물을 수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불교수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 시기에 이미 도가와 유가가 중심사상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한수 이남에서 열병할 때 軍旗가 황색을 띠고 있었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근초고왕대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불교가 수용되지 않은 것은 도가ㆍ유가사상이 그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 시기 동진의 황제들도 불교에 우호적이기는 하였지만, 봉불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한 원인으로볼 수 있다.
침류왕대의 불교수용은 지배층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근구수왕대부터 약화되기 시작한 왕권은 새로운 사상을 찾았고, 당시 백제 내부에 침투해 있던 불교는 그 대안으로 모색되었다. 그리하여 침류왕대 불교를 수용하자마자 사찰을 창건하고 10명을 도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침류왕이 불교를 통하여 왕권을 고양하려던 의도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마라난타의 성격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신이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신이성을 곧 왕권과 연결시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왕실의 불교 수용이 귀족세력의 전적인 동의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침류왕과 진사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불교가 백제사회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귀족세력들이 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왕실의 불교수용과 백제사회의 정착노력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서 찾아진다. 즉, 선문문화를 백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기 이전에 이를 이식시키고자 함으로써 문화적인 이질성을 노출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아신왕은 즉위하면서 불교를 널리 퍼뜨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신왕의 불교홍포 노력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실패함으로써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개로왕대 불교는 도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도림은 고구려의 승려로 환속하여 백제로 오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개로왕대에 불교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개로왕 재위 18년에 북위로 보내고 있는 표문에 “대대로 신령하신 교화를 받았으나”란 대목이 있는 것은 당시 백제의 불교가 남조에만 국한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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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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