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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 고대 동아시아 사상의 교류 ; 일본불교의 원측에 대한 인식 -나라시대를 중심으로- = Understanding of Wonchuk(圓測) in the Japanese Buddhism of the Nara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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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151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9-109(31쪽)
제공처
본고는 일본 불교에서의 원측 이해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방법으로서는 첫째, 일본 쇼소인(正倉院) 고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원측 저술의 필사 기록을 조사하여 원측 저술의 유통 현황을 파악한다. 둘째는 나라시대 법상종 문헌에서의 원측 인용에 대한 한 예를 검토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일본 나라시대에 중국 법상종에 대한 정통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기존 견해를 방증하는 결론에 이를 것이고, 나아가 일면 신라의 원측이 중국의 기보다 더 중시되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도출할 것이다. 나라(奈良)시대에는 사경소가 설치되어 많은 불교 저술이 필사된다. 쇼소인에는 이와 같은 8세기의 고문서가 1만여 점 정도 전해진다. 나라시대에 필사되었던 원측의 저술은 총 9종류이다. 원측의 저술은 731년부터 774년까지 44년에 걸쳐 꾸준히 필사기록이 보이는데, 특히, 747년과 751년에 가장 많이 필사된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필사된 저술은 『성유식론소』로 30여 회 필사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나라시대에 필사된 기의 저술은 원측 저술의 2 배인 19여종에 이른다. 그의 저술도 역시 731년부터 필사되기 시작한다. 95여회의 필사기록이 있는 원측보다 30여회 많아 122회에 달한다. 하지만, 필사된 기의 저술 종류가 원측 저술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일본에서 기의 저술을 원측의 저술보다 특별히 더 중시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의 저술 가운데 가장 많이 필사되는 것이 『법화경소』의 명칭으로 필사된 『법화현찬』 10권이다. 반면에 『성유식론소』는 14회 정도 필사된다. 반면에 원측의 『성유식론소』는 30여회 필사된다. 이 같은 통계로부터 770년대까지는 『성유식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원측의 『성유식론소』가 기의 『성유식론소』보다 더 중시되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가능하다. 원측의 제자 도증과 기의 제자 혜소에 대한 필사 기록에도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즉 도증과 혜소의 학파 상승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혜소의 저술로서는 『최승왕경소』가 많이 필사되는데 일본에서 호국경전으로서 중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나라시대 말 젠주의 저술 『증명기』와 젠주 다음에 활약했던 고묘를 통해 볼 때, 당시, 특별히 원측과 기를 차별하려는 입장이나 신라와 중국을 구별하려는 학문적 태도를 확인할 수 없다. 향후 일본에서의 원측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젠주 뿐 아니라 젠주 이외의 유식문헌과 유식문헌 이외에서의 원측인용의 예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더보기This article purports to study the understanding of Wonchuk in the Japanese Buddhism of the Nara period. In this study, firstly, I researched the circulation of Wonchuk`s writings by investigating the recordings on the transcription of Wonchuk`s writings presented in the ancient documents of Shosoin(正倉院) in Japan. Secondly, I probed an example of citation of Wonchuk`s writings in the documents of the Hosso school in the Nara period. Thus, I came to the conclusion that supports the existing supposition that there had been no consciousness on the orthodoxness of the Chinese Fashang school in the Nara period, with the possibility that Wonchuk from Silla might have been more important than the Chinese Chi. In the Nara period, there have been many transcriptions of Buddhist writings with the establishment of transcription offices in many places. In Shosoin, there remains about ten thousand pieces of such ancient documents from 8th century. In total, 9 kinds of Wonchuk`s writings had been transcribed in the Nara period. From 731 AD to 774 AD, for 44 years, there are recordings on continuous transcription of Wonchuk`s writings, especially in the years of 747 AD and 751 AD. The Seongyusikronso(成惟識論疏) is recorded to have been transcribed 30 times, which shows its popularity excelling the other works of Wonchuk. On the other hand, the transcription of Chi`s writings in the Nara period is recorded to have been done in 18 kinds, which are twice as many as that of Wonchuk`s writings. His writings also began to be transcribed in the year of 731 AD. The number of times being transcribed in the case of Chi`s writings surpasses the one in the case of Wonchuk`s writings by 34 times, its being 126 times compared to 92 times in the latter case. Considering the kinds of Chi`s writings twice as many as that of Wonchuk, however, I could not come to the conclusion that Chi`s writings have been transcribed saliently more often than Wonchuk`s writings. Among Chi`s writings, the Fahuaxuanzan(法華玄贊) in 10 volumes, in the name of the Fahuajingshu(法華經疏) is recorded to have been transcribed most often, while his Chengweishilunshu(成惟識論疏) is recorded to have been transcribed 17 times. From such statistical analysis, until the decades of 770 AD, in order to understand the Chengweishilun(成惟識論), Japanese Buddhist scholars might be carefully supposed to have focused on Wonchuk`s Seongyusikronso(成惟識論疏) more than on Chi`s Chengweishilunshu(成惟識論疏). Considering the writings of Jenju(善珠) and Gomyo(護明) in the end of the Nara period, I could not ascertain their scholarly attitude to distinguish Wonchuk and Chi or to distinguish Silla and China in their understanding of the Weishi(惟識) school. In the future, there remains the necessity to analyze more critically the cases of their understanding of Wonchuk in the Weishi and other documents in order to investigate more thoroughly the understanding of Wonchuk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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