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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혜경궁 가문의 정치적 역할과 위상 = The political role and status of Hyegyeonggung(惠慶宮) family in the late 18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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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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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is written to review the trend of Hyegyeonggung family in the late 18th. It aims to reconstruct the political history of the time and ,at the same time, explain, the trend of Hyegyeonggung family which is classic one of great family in the late choson period. After Hyegyeonggung was selected as Crown Princess Consort, her family’s political role had been more and more emphasized. In this circumstance, Hyegyeonggung’s father, Hongbonghan(洪鳳漢) took lead of Tangpyeong(蕩平) as bureaucrats and regard himself administrating the state to relieve the people’s suffering at that time.
After Imohhwabyeon(壬午禍變), although there was controversy about who should took responsibility of it, the members of Hyegyeonggung family including Hongbonghan totally dominated from prime minister to panseo(判書) of six jo, cham-pan(參判) or a member of the Censorate, based on Youngjo(英祖)’s implicit faith. In addition, political situation was taken lead by the power related to Hongbonghan. Literally, it was the political situation leaded by Beolyeol(閥閱). In this situation, political competition about whether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succeeded the throne or not became more and more intensified. Eventually, it caused the difference of political viewpoint between family members.
At the end, Hyegyeonggung family faced the crisis when Honginhan(洪麟漢) was declared as offender of political justification right after Jeongjo(正祖) mounted to throne. However, due to Hyegyeonggung, the biological mother of king, the political care about Hyegyeonggung family continued even after Jeongjo’s accession to the throne, with the status of “Womb main family(慈宮本家)”. Under the lead of king, honorable title was given to Hongbonghan, a funeral oration was continually sent to their family and glorious Hyegyeonggung family’s fortune was highlighted. Furthermore, the publication of 『Modang naewae sonlok(慕堂內外孫錄)』 maximized it. On the other hand, Jeongjo utilized this book as a base of Tangpyeongchaek(蕩平策). He expressed that some members related with loyalty were intentionally left out, recruiting beyond political party. And then after, he made members of Hyegyeonggung family participate in Eulmyo(乙卯) year Wonhaeng(園行) and trace of the past associated with Hongbonghan had been organized. What made it possible was the special statues of Hyegyeonggung family, “Womb main family”.
이 글은 18세기 후반 惠慶宮 가문의 동향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조선 후기 門閥의 대표적인 가문인 혜경궁 가문의 동향을 해명함과 동시에 당대 정치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혜경궁 가문은 혜경궁이 世子嬪으로 간택된 이후 정치적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혜경궁의 아버지인 洪鳳漢은 蕩平官僚로서 활동하며, 당대의 “經濟”를 자임하였다. 단, 세자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추진된 濬川 사업을 홍봉한이 주도하는 모습은 思悼世子에 대한 정치적 후원자로서 역할을 포기하였음을 보여준다. 壬午禍變 이후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英祖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홍봉한을 비롯한 혜경궁 가문의 구성원은 大臣職에서부터 6조의 판서나 참판 및 언관직을 장악하였다. 또한 홍봉한과 관련이 있는 세력들에 의해 정국이 주도되었다. 그야말로 閥閱이 주도하는 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세손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정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가문 구성원 사이에서 정치적 입장에 차이를 가져왔다. 결국 정조 즉위 직후 洪麟漢이 義理罪人으로 천명되면서 가문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정조 즉위 이후 국왕의 생모인 혜경궁의 존재로 인해 혜경궁 가문은 “慈宮本家”라는 위상을 갖게 되면서 국왕의 정치적 배려가 계속되었다. 국왕의 주도하에 홍봉한에게 諡號가 내려지고 계속적으로 제문을 보내면서 풍산 홍씨의 혁혁한 가세가 강조되었다. 정조는 『慕堂內外孫錄』의 간행을 통해 이를 더욱 극대화하는 동시에 탕평정치를 위한 기반 구축에 활용하였다. 일부 의리와 관련된 인원은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되 당파를 초월하여 등재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후 을묘년 원행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고, 홍봉한 관련 사적을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혜경궁 가문이 “자궁본가”라는 특수한 위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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